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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승부처, 빅테크 아닌 ‘중견 소프트웨어’로 옮겨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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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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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 번스타인은 AI 경쟁의 승자가 빅테크나 AI 스타트업이 아니라 산업별 워크플로우를 쥔 중견 소프트웨어 기업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클라르나·재스퍼 사례를 들어 ‘어디에 어떻게 적용하느냐’가 핵심이며, 실행 속도와 기록 시스템 장악력이 승부를 가른다고 전했다.

인공지능(AI) 경쟁에서 결국 가장 큰 과실을 가져갈 주체는 초대형 기술기업도, 순수 AI 스타트업도 아닐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고객 신뢰와 산업별 전문성, 빠른 실행력을 갖춘 ‘중견 기술기업’이 다음 승부처에서 가장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는 주장이다.

브래드 번스타인은 최근 기고문에서 시장이 흔히 ‘큰 회사가 AI에서도 가장 크게 이긴다’고 가정하지만, 실제 현장은 훨씬 복잡하다고 짚었다. 기업 규모만으로 AI 도입 성패가 갈리지 않으며, 오히려 특정 산업의 복잡한 업무 흐름을 오래 다뤄온 중견 기업들이 실질적인 경쟁우위를 확보할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를 복싱에 빗댔다. 헤비급처럼 몸집이 큰 기업이 겉보기에 유리해 보이지만, 실제 승부는 속도와 완성도, 지구력, 판단력에서 갈린다는 것이다. 1951년 슈거 레이 로빈슨이 더 크고 강한 제이크 라모타를 13라운드 TKO로 꺾은 사례를 들며, 기업도 ‘크기’보다 ‘완성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사례도 제시됐다. 2024년 약 60억달러, 원화 약 8조7156억원 규모의 가치를 인정받은 클라르나는 오픈AI 기반 챗봇이 수백만 건의 상담을 처리하고 고객센터 직원 700명 몫을 대신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도입 초기 고객 반응이 악화했고, 2025년에는 다시 사람 채용을 늘렸다. 생성형 AI 스타트업 재스퍼 역시 챗GPT 확산으로 핵심 서비스가 빠르게 범용화되면서 기업가치가 크게 흔들렸다.

번스타인은 이런 사례가 AI 자체의 한계라기보다, ‘어디에 어떻게 적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봤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MSFT) 코파일럿이나 세일즈포스 같은 수평형 플랫폼은 범용 업무에는 강하지만, 규제가 많고 예외 처리도 잦은 산업별 워크플로우까지 완전히 대체하긴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 때문에 중견 기술기업은 AI에 대체되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AI가 호출해야 하는 ‘기록 시스템’으로 자리 잡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시장 데이터도 이런 주장에 힘을 싣는다. 번스타인은 PwC 자료를 인용해 현재 AI가 창출하는 경제적 이익의 4분의 3가 상위 20% 기업에 집중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움직임이 늦은 기업은 이미 경쟁에서 한 라운드를 내줬을 수 있다는 의미다.

중견 기술기업이 AI 시대에 유리한 이유

그는 유망한 중견 기술기업의 공통 조건으로 다섯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냉정한 자기 점검’이다. AI가 실제 가치를 만드는 영역과, 단지 개발 자원과 예산만 소모하는 영역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사람 수에 따라 요금을 받는 기존 ‘좌석 기반’ 과금 모델은 AI 에이전트 시대와 맞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 사례로는 인터컴이 제시됐다. 이 회사는 2023년 AI 에이전트 ‘핀’ 가격을 ‘해결된 대화 1건당 99센트’로 바꾸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이후 해당 서비스는 회사의 핵심 상품이 됐고, 최근 세일즈포스에 36억달러, 원화 약 5조2294억원에 매각됐다. 사용자가 아니라 ‘성과’에 과금하는 구조가 AI 시대에 더 적합하다는 해석이다.

둘째는 ‘민첩성’이다. 대기업은 기술 부채와 기존 인프라, 복잡한 승인 절차에 묶여 AI 실험 하나에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반면 중견 기업은 자체 데이터와 일정한 규모를 이미 확보했으면서도, 조직이 지나치게 비대하지 않아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이 민첩성은 단지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 문화의 문제이기도 하다.

예로 식당 소프트웨어 기업 토스트가 언급됐다. 초기 AI 성과는 엔지니어가 아니라 제품 담당 조직이 문서 작업과 내부 프로세스를 줄이는 데 AI를 활용하면서 나왔다. 이후 이들 팀은 신규 기능과 외부 커뮤니케이션을 연결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고, 대규모 언어모델(LLM)은 AI 에이전트 지침을 계속 수정·개선하는 역할을 맡았다.

셋째는 ‘워크플로우 장악력’이다. AI 시대의 가장 강한 해자는 복잡한 업무 흐름을 누가 소유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중견 기업은 수년간 고객 시스템에 깊게 들어가 예외 데이터와 업무 맥락을 축적해 왔다. 단순히 정확도 95%를 99.5%로 끌어올리는 마지막 구간이 바로 진입장벽이 된다는 설명이다.

계약 관리 기업 아질로프트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의 강점은 단순히 계약서에 AI를 붙이는 데 있지 않다. 계약 승인, 협상, 수정 이력 전반에서 왜 내부 팀이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학습하는 데 경쟁력이 있다는 평가다. 결국 AI 에이전트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기업 내부의 ‘의사결정 기억’을 조회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넷째는 ‘기술 실행 역량’이다. 많은 대기업이 아직도 AI 파일럿 단계에서 머물고 있지만, 실제 배포와 운영은 예상보다 훨씬 어렵다. 반면 중견 기업은 오랜 기간 실제 고객을 상대하며 문제를 해결해 온 경험이 있다. 2007년 설립된 사이버보안 기업 릴리아퀘스트는 1000개 이상 고객 환경에서 축적한 탐지 로직을 바탕으로 AI 자동화를 확대했고, 기존 보안 운영 인력을 더 높은 부가가치의 제품 개발 역할로 재배치했다.

다섯째는 ‘건전한 재무구조’다. 대차대조표가 상대적으로 탄탄한 기업은 실험 비용을 감당하고, 필요한 인수합병을 추진하며, 시장 혼란기에도 연구개발 투자를 이어갈 수 있다. 반대로 부채 부담이 크고 비용 절감 중심으로 운영되는 기존 대형 소프트웨어 기업은 AI 연구개발에 공격적으로 자본을 재배치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AI 경쟁의 핵심은 ‘크기’보다 실행 속도

번스타인은 AI 전환의 기회가 무한정 열려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기업이 완벽한 AI 전략을 세울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핵심 워크플로우를 먼저 고르고 이를 지도처럼 그려본 뒤 AI가 그 업무를 더 강하게 만드는지, 아니면 더 취약하게 만드는지부터 판단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이는 결국 AI 경쟁이 기술 시연이나 마케팅 구호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누가 더 빨리 고객 접점의 실제 업무에 AI를 녹여내고, 그 과정에서 생성되는 데이터와 의사결정 구조를 자기 시스템 안에 쌓아두느냐가 승부를 가를 가능성이 크다.

정리하면, 다음 AI 시장의 승자는 반드시 몸집이 가장 큰 기업이 아닐 수 있다. 산업별 복잡한 업무를 이해하고, 빠르게 실험하며, 성과 중심으로 사업 모델을 바꿀 수 있는 중견 기술기업이 오히려 더 큰 점유율을 가져갈 수 있다는 분석이다. AI 시대의 핵심은 ‘규모’가 아니라 ‘완성도’와 ‘실행력’이라는 점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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