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컴퓨터가 비트코인(BTC)과 이더리움(ETH)의 기존 서명 체계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경고가 다시 암호화폐 보안 의제로 떠올랐다. 핵심은 당장 네트워크가 무너진다는 주장이 아니라, 공개키가 노출된 자산과 프로토콜이 사전에 암호 전환 경로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다.
구글 퀀텀 AI(Google Quantum AI)는 3월 31일 공개한 논문에서 BTC와 ETH가 쓰는 secp256k1 기반 256비트 타원곡선 암호를 깨는 데 필요한 자원을 새로 추산했다. 라이언 배부시(Ryan Babbush), 하트무트 네벤(Hartmut Neven), 댄 보네(Dan Boneh) 등 공동 저자는 1200개 이하 논리 큐비트와 9000만개 이하 토폴리 게이트, 또는 1450개 이하 논리 큐비트와 7000만개 이하 토폴리 게이트 조합을 제시했다.
논문은 초전도 방식 구조, 10의 마이너스 3승 수준 물리 오류율, 평면 연결성을 가정하면 회로 실행이 분 단위로 가능하고 필요한 물리 큐비트가 50만개 미만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구글은 같은 날 공식 블로그에서 암호화폐 업계가 사후 대응보다 선제적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추정은 양자컴퓨터의 성능이 이미 공격 가능 수준에 도달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구글이 공식 블로그에서 2029년 포스트양자 암호화 전환 목표를 제시한 것처럼, 빅테크와 표준 기관의 전환 일정이 암호화폐 지갑과 수탁 인프라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
공격 시나리오는 거래가 진행되는 동안 공개키를 역산하는 ‘온스펜드’ 공격이다. BTC는 새 거래가 메모리풀에 올라간 뒤 블록에 포함되기 전까지 시간이 생긴다. ETH는 블록 시간이 짧지만, 이미 거래한 계정의 공개키가 온체인에 남는 구조가 별도 위험으로 꼽힌다.
공개키 암호는 공개키와 개인키를 나눠 쓰는 방식이다. 사용자는 개인키로 거래에 서명하고, 네트워크는 공개키를 바탕으로 서명의 유효성을 확인한다. 충분히 강한 양자컴퓨터가 공개키에서 개인키를 역산할 수 있게 되면, 기존 서명 체계의 보안 전제가 흔들릴 수 있다.
이더리움 공식 문서는 양자컴퓨터가 장기적으로 ECDSA, BLS 서명, KZG 약속, 영지식 증명 계열에 위협이 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현재 위협은 ‘임박한 위협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더리움은 린 이더리움(Lean Ethereum) 로드맵에서 2029년을 양자내성 전환 목표 시점으로 제시했다.
비트코인 쪽 쟁점은 기술보다 합의에 가깝다. 코인데스크는 비트코인 약 690만 BTC가 공개키 노출 구조에 있다고 전했다. 이는 즉시 탈취 가능한 물량이 아니라, 공개키가 온체인에 드러난 주소 유형과 거래 이력을 기준으로 본 노출 추정치다.
비트코인 코어 저장소에는 양자내성 지갑 지원과 합의 전환을 다룬 연구 제안이 올라왔지만, 해당 이슈는 ‘계획 없음으로 종료’ 상태다. 앞선 논의도 결국 프로토콜 변경, 지갑 호환성, 거래소·커스터디 반영이 함께 필요하다는 문제로 이어졌다.
이더리움도 자동 해결 단계는 아니다. 코인데스크는 상위 1000개 이더리움 지갑이 약 2050만 ETH를 보유하고 있고, 최소 70개 주요 관리자 키가 온체인에 노출돼 있다고 보도했다. 기존 스마트계약, 브리지, 레이어2는 각각 키 교체와 코드 수정이 필요하다.
개발자 커뮤니티에서는 포스트양자 서명과 스타크(STARK) 집계를 결합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이더리움 매지션스(Ethereum Magicians)에는 ‘EIP-8288: PQ 서명과 STARK 집계를 위한 프레임 타입’ 같은 제안이 올라와 있다. 계정 추상화, 키스토어 형식, 레이어2 호환성은 전환 과정에서 함께 맞춰야 할 과제로 꼽힌다.
업계 반응은 엇갈린다. 일부 커뮤니티는 공개키 노출 자산을 빨리 옮겨야 한다는 긴박론을 내세우고, 다른 쪽은 실제 위협 시점이 훨씬 뒤라는 회의론을 보인다. 두 시각 모두 현재의 하드웨어가 곧바로 BTC와 ETH를 깨뜨린다는 주장과는 거리를 둔다.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는 공개키 암호를 쓰는 조직이 지금 양자내성 암호로 이전해야 한다고 안내했다. NIST는 양자 취약 알고리즘을 2035년까지 표준에서 단계적으로 제거한다는 일정을 제시했다. 암호화폐 네트워크의 논점도 하드웨어 도달 시점보다 전환에 걸리는 시간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에 놓여 있다.
국내 투자자에게도 쟁점은 가격 전망이 아니라 보관 구조다. 거래소, 수탁사, 지갑 사업자, 브리지 운영자가 어떤 서명 체계와 키 관리 방식을 쓰는지에 따라 전환 부담이 달라질 수 있다. 공개키 노출 추정치는 즉시 탈취 가능 물량이 아니라 전환 우선순위를 가늠하는 위험 범위로 봐야 한다.
구글 논문과 이더리움 공식 문서, NIST 일정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양자 공격이 오늘의 사고는 아니지만, 암호 전환은 하루 만에 끝나는 작업이 아니다. 이더리움은 2029년 목표를 제시했고, NIST는 2035년까지 양자 취약 알고리즘을 표준에서 단계적으로 제거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