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BTC) 8만 개(약 1조 1,120억 원) 이상이 한꺼번에 이동해 시장을 놀라게 한 가운데, 이 트랜잭션의 배경을 둘러싼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하드웨어 지갑 업체 레저의 최고기술책임자(CTO) 샤를 길메(Charles Guillemet)는 해당 이체가 발생하기 며칠 전, 해당 주소들에 수상한 메시지가 전달됐다는 사실을 밝혀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길메에 따르면, 이 메시지는 ‘법적 공지(legal notice)’라는 제목과 함께 2011년에 만들어진 비트코인 주소 8곳에 전송됐다. 믿기 어려운 이 메시지는 해당 주소는 소유자가 장기간 응답하지 않아 ‘버려진 지갑’으로 간주되며, 일정 시한 내에 프라이빗 키로 온체인 거래를 하지 않으면 지갑 소유권을 주장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주장은 법률 사무소 ‘솔로몬 브라더스’를 바이낸스(Binance)나 레저(Ledger)가 아닌 발신 주체로 지목하면서 더욱 논란을 키웠다. 첨부된 경고문에는 응답 기한으로 2025년 10월 5일을 못 박고, 이후에는 해당 코인을 ‘무주물’로 간주해 법적 권리를 주장하겠다는 내용까지 포함됐다.
그러나 길메는 이러한 시도가 법적으로 정당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실제로 해당 메시지를 수신한 몇몇 주소에서는 약 1만 BTC씩 총 8건의 이체가 발생했는데, 이 금액은 현재 시세 기준으로 약 11조 1,200억 원에 달한다. 이는 ‘채굴 초창기’ 혹은 ‘사토시 시대’라 불리는 시기에 만들어진 장기 미사용 지갑에서 움직인 첫 사례로, 거래 합법성에 관한 논란이 불가피한 이유이기도 하다.
길메는 또 이체가 단순히 ‘우연의 일치’였을 가능성과 함께, 메시지를 본 진짜 소유자가 자산을 보호하고자 재빨리 자금을 옮겼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일부에서는 해당 자금의 출처가 불분명해, 자금 출처를 감추기 위한 의도적인 ‘해킹 시나리오 조작’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그는 “이런 메시지가 단지 8개 주소뿐만 아니라 다른 장기 미사용 비트코인 주소에도 무더기로 보내졌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해당 시도 자체가 비트코인의 ‘탈중앙성과 사유 재산 보호’라는 철학을 정면으로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디지털 자산의 주인을 법적으로 추정한다는 시도 자체가 위험한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사건은 비트코인 장기 보유자들에게 보안 강화의 경각심을 자극함과 동시에, 향후 ‘잠자는 고래 지갑’의 움직임이 더 잦아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시장은 해당 BTC의 다음 행보뿐 아니라, 이와 유사한 법률적 공세가 또 발생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