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이 중동 긴장 국면에서도 상승세를 보였지만 시장의 관심은 원유와 금속 등 실물 자산으로 이동했다. 공급망 불안과 인플레이션 압력이 이어지며 자금 흐름이 ‘하드 자산’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강화됐다는 분석이다.
16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올해 대부분 기간 동안 6만달러에서 7만5000달러 사이에서 움직이며 돌파를 시도했지만 뚜렷한 추세를 만들지 못했다. 이란 전쟁 이후 주식과 금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이는 향후 상승 기대보다 이전 낙폭이 컸던 영향이 크다는 평가다. 비트코인은 지난해 10월 기록한 고점 대비 40% 이상 하락한 상태다.
비트코인은 16일 싱가포르 시간 기준 정오 무렵 약 7만3600달러에서 거래됐다. 장중 한때 3.6% 상승했지만 이후 상승폭을 일부 반납했다. 최근 시장에서는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가격이 소폭 상승하면 미결제약정이 늘고 펀딩비가 마이너스로 기울며 이후 숏 포지션 청산에 따른 단기 급등이 나타나는 구조다.
암호화폐 마켓메이커 윈터뮤트의 데스크 전략가 재스퍼 드 마에르는 “시장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며 “가격이 오르면 미결제약정이 늘고 펀딩비가 음수로 기울었다가 이후 숏 스퀴즈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펀딩비가 음수라는 것은 숏 포지션 투자자가 포지션 유지를 위해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는 의미로 시장 심리가 여전히 약세 쪽에 기울어 있음을 시사한다.
그는 또한 현재 시장의 유동성이 지난해 말보다 얇아졌다고 지적했다. 당시 비트코인은 몇 달 동안 8만5000달러에서 9만5000달러 사이에서 등락했지만 현재는 거래 두께가 줄어들어 가격이 급격하게 흔들릴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비트코인의 하락 흐름은 지난해 10월 사상 최고가인 12만6000달러를 기록한 직후 시작됐다. 같은 달 10일에는 약 190억 달러 규모의 레버리지 포지션이 청산되며 시장 충격이 발생했다. 이후 가격은 몇 차례 반등을 시도했지만 상승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상태에서 점진적인 하락 흐름을 이어왔다.
아미나은행 파생상품 트레이딩 책임자 안드레야 코벨리치는 이러한 흐름이 과거 약세장에서도 반복됐던 패턴과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급락 이후 약 20% 반등이 나타난 뒤 상승 모멘텀이 부족해 정체되는 구조가 반복된다”며 “현재 시장에는 돌파할 만큼의 모멘텀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현재 시장의 관심은 다른 자산으로 이동한 모습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이후 원유 가격은 며칠 사이 약 70% 급등해 배럴당 70달러 수준에서 120달러까지 상승했다가 현재는 약 100달러 부근에서 거래되고 있다. 알루미늄 가격도 사상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 금은 이란 공격 이후 강달러와 국채 금리 상승 영향으로 비교적 제한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금은 지난해 65% 상승했지만 같은 기간 비트코인은 하락했다.
이 같은 흐름은 자금이 실물 자산으로 이동하는 ‘하드 자산 로테이션’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다. 칼라일 에너지 패스웨이의 제프 커리 최고전략책임자는 이를 닷컴버블 이후 나타났던 원자재 상승 사이클과 비교했다. 그는 이를 “구경제의 복수”라고 표현하며 중량 자산, 기술 노후화 위험이 낮은 자산을 의미하는 ‘HALO 자산(Heavy Assets, Low Obsolescence)’ 보유 전략을 제시했다. 그는 “금속과 금, 석유를 보유하고 싶다”고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러한 관점의 배경에는 공급망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 원유뿐 아니라 가스, 비료, 석유화학, 금속 등 여러 원자재 공급이 동시에 압박을 받고 있다. 정유시설 공격과 호르무즈 해협 주변 해상 운송 위험이 이어지면서 공급 충격이 해소되기까지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비트코인의 위험 요인은 중동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벨리치는 민간 신용 시장의 긴장, 고착화된 인플레이션, 중앙은행의 제한적인 완화 여력 등이 또 다른 충격을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의 기본 시나리오는 단기 반등 이후 다시 한 번 경기 순환적 하락이 나타나며 자금이 원자재와 인플레이션 헤지 자산으로 이동하는 흐름이다.
암호화폐 시장 내부에서도 자금 이동이 나타나고 있다. 원자재 가격을 추종하도록 설계된 토큰과 파생상품으로 거래가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24시간 거래가 가능한 플랫폼 하이퍼리퀴드에서는 현재 원유 관련 계약이 가장 활발하게 거래되는 종목 중 하나로 집계됐다. 변동성이 거래의 핵심 상품이라면 현재는 에너지와 금속이 이를 제공하고 있다는 평가다.
다만 비트코인이 중동 갈등 이후 상승세를 보이며 주식 시장과 다른 흐름을 보인 점은 주목할 부분이라는 의견도 있다. XBTO의 칼 나임 최고상업책임자는 비트코인이 전통 위험자산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성숙한 자산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블룸버그 집계 데이터에 따르면 최근 비트코인 현물 ETF 수요도 증가했다. 투자자들은 3주 연속 순유입을 기록하며 총 2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투입했다.
그럼에도 현재 시장에서는 비트코인이 ‘HALO 자산’ 랠리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금속과 석유 공급 문제에 집중된 시장 환경에서는 비트코인의 코드 기반 희소성만으로는 가격 상승을 이끌기에 부족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