셸과 비피, 토탈에너지스 등 유럽 주요 정유사들은 2026년 1분기 중동 전쟁으로 커진 에너지 가격 변동성을 거래 기회로 활용하면서 최대 47억5천만달러, 우리 돈 약 7조원에 이르는 추가 수익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0일(현지시간) 금융권 애널리스트 5명의 분석을 종합해 이들 3개사의 트레이딩 부문이 전 분기보다 최소 33억달러에서 최대 47억5천만달러의 이익을 더 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번 실적 개선의 배경에는 지정학적 충격으로 흔들린 국제 에너지 시장이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베네수엘라 석유 통제 같은 변수로 원유와 석유제품 가격이 지역별·시점별로 크게 출렁이자, 이들 회사는 가격 차이를 이용해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거래에 적극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동시에 가격 급등락에 대비하려는 고객들에게 헤지, 즉 위험분산용 거래를 제안하면서 수수료와 매매 차익을 함께 키운 것으로 분석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유럽 3대 정유사의 올해 1분기 순이익 합계가 전 분기보다 69억달러 늘었고, 이 가운데 트레이딩 부문이 차지한 비중이 48%에서 69% 수준으로 추정된다고 짚었다. 이들 기업은 트레이딩 부문의 세부 수익을 따로 공개하지 않지만, 주가 흐름에도 시장 기대가 반영됐다. 중동 전쟁 발발 이후 비피 주가는 12%, 토탈에너지스는 21%, 셸은 9% 상승했다. 정유·가스 생산 자체보다 시장 변동에 대응하는 거래 역량이 기업 수익성을 좌우하는 비중이 그만큼 커졌다는 뜻으로 읽힌다.
반면 엑손모빌과 셰브런 등 미국의 대형 석유기업들은 같은 기간 파생상품 헤지 포지션에서 손실을 기록해 대조를 보였다. 시장에서는 유럽 업체들이 최근 몇 년간 트레이딩 조직을 공격적으로 키우며 실전 역량을 축적한 반면, 미국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기업 문화 탓에 적극적 거래에 한계가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애널리스트는 토탈에너지스가 이번 전쟁 국면에서 아랍에미리트와 오만의 원유 선적 물량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거래로 10억달러 이상을 벌었을 가능성을 거론하며, 이런 방식은 미국 정유사에서는 보기 어려운 접근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미국 업체들의 부진을 단순한 경쟁력 열세로만 볼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미국 회계기준은 실물 원유가 실제 인도되기 전에도 보유한 파생상품 가치를 분기마다 시가로 평가해 손익에 반영하도록 하지만, 유럽은 상대적으로 이런 회계 부담이 덜해 장부상 실적이 더 안정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대런 우즈 엑손모빌 최고경영자는 이번 손실이 실제 현금 유출이 아니라 회계 인식 시점의 차이에서 생긴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이번 사례는 에너지 기업의 성과가 단순한 생산량보다 트레이딩 역량과 회계 제도 차이에 크게 좌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흐름은 중동 정세와 산유국 정책, 글로벌 원유 수송 차질 여부에 따라 앞으로도 유럽계 정유사들의 실적 변동성을 키우는 방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