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앞두고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지분을 선점하려는 금융권과 정보기술 업계의 경쟁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제도 변화가 본격화하면 거래소가 단순 매매 중개를 넘어 결제·송금·투자 플랫폼의 핵심 거점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존재감을 드러낸 곳은 하나금융그룹이다. 하나은행은 지난 5월 15일 카카오인베스트가 보유한 두나무 지분 6.55%를 1조33억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이 거래를 단순한 재무 투자보다 미래 사업권 확보 성격이 강한 움직임으로 본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화폐인 원화 가치에 연동해 가격 변동성을 줄인 가상자산을 뜻하는데, 제도가 정비되면 은행과 증권, 결제 사업이 가상자산 시장과 직접 맞닿을 가능성이 커진다. 이런 변화에 대비해 거래소 지분부터 확보하려는 흐름이 뚜렷해진 셈이다.
뒤이어 삼성그룹과 한화그룹 계열사들도 두나무 투자에 가세했다. 삼성증권, 삼성에스디에스, 삼성카드는 5월 28일 카카오인베스트 보유 두나무 지분 4.0% 취득을 공시했고, 한화투자증권은 5월 20일 지분 3.90%를 추가로 사들였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두나무가 네이버 자회사 네이버파이낸셜과 포괄적 주식교환 방식의 합병을 추진하는 점이 이런 투자 판단에 영향을 줬다고 본다. 거래소 지분을 확보하면 가상자산 사업 기반을 갖출 수 있을 뿐 아니라, 네이버와의 연계 사업에서도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어서다. 특히 증권업계는 미국의 온라인 투자 플랫폼 로빈후드처럼 주식과 가상자산을 한 화면에서 거래하는 통합 플랫폼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최근 증시 호조로 자금 여력이 커진 증권사들이 새 성장처를 찾는 과정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관심은 업계 1위 두나무에만 머물지 않고 있다. 미래에셋그룹 계열사 미래에셋컨설팅은 지난 2월 코빗 지분 92.06%를 1천335억원에 취득하기로 결정하고 현재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코인원에도 새 투자자가 붙었다. 한국투자증권과 오케이엑스벤처스는 5월 29일 코인원 최대주주 차명훈 대표와 2대 주주 컴투스홀딩스가 보유한 구주 일부와 신주를 각각 20%씩 취득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오케이엑스벤처스는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 오케이엑스의 투자 부문으로, 해외 대형 거래소가 국내 원화 거래소 지분 확보에 나선 사례는 바이낸스의 스트리미(고팍스) 지분 인수 이후 두 번째다. 국내외 자본이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 재편 압력은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이 과정에서 은행권 전반의 물밑 움직임도 감지된다. 두나무와 손잡은 하나금융 외에 케이비금융, 신한금융, 우리금융, 엔에이치농협금융 등도 은행 중심의 컨소시엄 구성이나 협업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금융과 가상자산을 엄격히 구분한다는 이른바 금가분리 원칙이 사실상 힘을 잃는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금융사를 제외한 협업 후보군으로는 두나무가 이미 연결 고리를 만든 네이버 외에 카카오와 토스 등이 거론된다. 다만 변수도 적지 않다. 스테이블코인 관련 조항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디지털자산기본법 논의가 언제 마무리될지 불확실하고, 공정거래위원회의 두나무-네이버파이낸셜, 미래에셋컨설팅-코빗 기업결합 심사 결과도 아직 예단하기 어렵다. 결국 지금의 지분 확보 경쟁은 제도 정비 속도와 규제 판단에 따라 더욱 커질 수도, 일부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같은 흐름은 향후 가상자산 거래소가 금융 인프라의 일부로 편입되는 방향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