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상반기 벤처 시장은 겉보기엔 회복세를 보이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양극화와 자본 집중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대형 스타트업 몇 곳에 자금이 몰리면서 대부분의 성장 단계 기업들은 소외되고 있는 실정이다. 초창기 창업자들은 소액의 프리시드 자금을 모으는 데 애쓰고 있고, 반대로 기업가치 50억 달러(약 7조 2,000억 원) 이상인 ‘울트라 유니콘’들은 단일 투자 라운드에서 수십억 달러를 조달하며 시장의 대부분 자금을 빨아들이고 있다.
크런치베이스에 따르면, 전체 유니콘의 13%가 유니콘 전체 평가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자금이 극소수 대기업으로 쏠리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만 11개의 회사에 700억 달러(약 100조 8,000억 원)가 투자됐으며, 오픈AI와 스케일AI 두 곳에 투입된 자금은 그중 540억 달러(약 77조 8,000억 원)에 달한다. 이는 벤처 시장 내 자금이 ‘흐르기보다 쌓이고 있는’ 구조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같은 현상의 원인으로는 기관투자자들의 신중한 기조와 운용사(GP)들의 보수적 판단이 꼽힌다. AI는 막대한 시장성과 필연성이 있는 기술로 인식되며 자본 유입을 촉진하고 있지만, 이로 인해 다른 성장 단계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자금을 확보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이고 있다. 특히 실질 수익이 발생하고,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중형 기업들조차 투자자 관심에서 밀려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는 것은 6~10년 차의 ‘그로스 스테이지’ 기업들이다. 이들은 수익성 전환을 눈앞에 두며 실질적인 시장 리더십을 형성해 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드 라운드 투자자에게는 성숙하고, 대형 투자자에게는 부족한 매력으로 평가받는다. 벤처 시장이 양극단 중심으로 움직이면서, 이 중간지대는 사실상 투자 공백지대로 전락하고 있다.
물론 일부 울트라 유니콘들이 실질적인 기술 혁신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앤듀릴, 앤스로픽 등은 장기적으로 세계 시장을 뒤흔들 개발을 진행 중이며, 그 수준의 자본을 필요한 이유도 명확하다. 하지만 시장 전체가 이들과 몇몇 아이콘 기업에만 집중된다면, 벤처 생태계 자체의 다양성과 회복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더 큰 위험은, 소수 기업에 지나치게 집중된 이 구조가 시장의 취약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들 중 하나라도 예상보다 저조한 성과를 내거나 펀더멘털이 의심받게 되면, 충격은 빠르게 전반으로 확산될 것이다. 닷컴 버블 시기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AI 인프라 투자 붐 속에서 수조 원이 데이터센터나 플랫폼 구축에 투입되고 있지만, 이를 활용한 실용적 애플리케이션은 아직 뒤따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주목해야 할 지점은 명확하다. 거대한 투자가 필요한 기업이 아닌, 자본 효율성을 갖춘 실질적 제품 기반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500억 원 규모의 자금으로도 충분히 수익성과 시장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는 모델을 갖추고 있다.
2025년 하반기는 벤처 업계의 ‘현실 검증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첨단 기술과 수십억 달러를 동원한 기업뿐 아니라,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가는 중견 스타트업들이 시장 내 잔존력을 입증하며 평가받게 될 것이다. 이 시기에 조용히 움직이며 실적 중심으로 움직인 투자자들이 장기적으로 높은 수익을 거둘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자본시장이 겉으로는 호황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성장 기업들이 자금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은 분명 위기의 신호다. 진정한 벤처 성공은 항상 조명을 받지 않는 그늘 속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을 돌아볼 때다. 수조 원 밸류에이션을 기록한 화려한 유니콘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단단한 기반 위에서 차세대 시장을 준비 중인 조용한 경쟁자들에게도 눈을 돌릴 때다. 지금 이들을 주목하지 않는다면, 5년 후 ‘스마트 머니’는 그 선택을 후회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