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시장이 하루 만에 무너졌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산 수입품에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하자, 시장은 순식간에 공황으로 돌변했다. 비트코인은 12% 넘게 떨어졌고, 이더리움과 주요 알트코인은 15~20%까지 급락했다. 하루 동안 1.6백만 명의 트레이더가 포지션을 잃었고, 청산 규모는 1,900억 달러에 달했다. 역대 어느 폭락보다 컸다. 루나 사태, FTX 붕괴, 코로나 쇼크를 모두 합친 것보다 강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그 원인을 정치로만 돌리기는 어렵다. 트럼프의 관세 발언은 불씨였지만, 진짜 폭탄은 레버리지였다. 암호화폐 시장은 오랫동안 ‘영구선물(perpetual futures)’이라는 위험한 장치 위에 세워져 있었다. 이 상품은 만기가 없고, 언제든 수십 배의 레버리지를 걸 수 있다. 거래소는 이 구조를 이용해 거래량을 부풀리고, 투자자는 단기 차익을 좇는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은 시장이 급격히 흔들릴 때 자기파괴적 청산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몇 분 만에 수조 원대 포지션이 날아가고, 유동성은 순식간에 증발했다.
더 큰 문제는 이 구조가 이미 기관 투자자까지 빨아들이고 있었다는 점이다. 헤지펀드와 알고리즘 트레이딩 업체들은 이 시장을 ‘효율적 수익 기계’로 판단하고, 고도의 퀀트 전략을 투입했다. 그러나 가격 변동성이 커지자 자동화된 포지션이 연쇄적으로 청산되며 시장 전체가 무너졌다. 한 트레이딩 플랫폼 CEO는 “기관들도 이번엔 피하지 못했다. 전형적인 블랙스완이었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는 암호화폐 시장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투자자들은 ‘탈중앙화’라는 이상을 말하지만, 실상은 중앙화된 탐욕 구조에 갇혀 있다. 거래소는 수수료를 위해 무제한 레버리지를 제공하고, 투자자는 ‘24시간 돈 버는 시장’이라는 환상에 빠진다. 위험은 분산되지 않고, 오히려 하나의 방향으로 쏠린다. 그 결과, 단 한 번의 외부 충격에도 시스템은 스스로 붕괴한다.
블록체인은 기술이다. 그러나 기술은 탐욕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이번 블랙스완은 암호화폐가 ‘금융 기술’의 단계에서 ‘금융 시스템’으로 진입하기 전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를 던졌다. 시장 신뢰는 기술이 아니라 건전한 구조에서 나온다. 규제 회피, 무제한 레버리지, 투기성 영구선물이 뒤섞인 지금의 시장은 ‘자율적 금융’이 아니라 ‘자기파괴적 실험’에 가깝다.
이제는 냉정하게 물어야 한다. “암호화폐 시장은 과연 성숙한 금융시장인가?” 이번 폭락은 단순한 가격 조정이 아니라, ‘레버리지 문명’이 자초한 붕괴다. 트럼프의 관세 발언이 사라져도 이런 구조가 유지된다면, 다음 블랙스완은 훨씬 더 빠르게, 그리고 더 깊게 올 것이다.
시장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거래가 아니라 더 많은 절제다. 암호화폐가 진정한 자산으로 남으려면,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을 통제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건 코인 가격의 반등이 아니라 시장 철학의 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