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무부가 이란과 연계된 비트코인(BTC) 지갑을 제재하며 3억4,400만 달러(약 5,093억 원) 규모의 암호화폐를 동결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이란 압박이 강화되는 가운데, ‘크립토 제재’가 핵심 수단으로 부상하는 흐름이다.
미국 재무부 스콧 베센트 장관은 이번 조치가 이란의 온체인 금융 인프라를 겨냥한 가장 큰 단일 제재 중 하나라고 밝혔다. 핵 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당국이 더 이상 암호화폐를 ‘주변적 문제’로 보지 않는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이란의 크립토 시장 규모는 지난해 77억8,000만 달러를 넘었으며, 이 중 절반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관련 활동으로 추정된다.
USDT와 비트코인으로 제재 회피 구조 구축
이란 중앙은행은 지난해 5억 달러 이상의 테더(USDT)를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달러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해 국제결제망 ‘SWIFT’를 우회하고 달러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USDT는 미국 은행 계좌 없이도 달러 가치에 접근할 수 있고, 블록체인 상에서 빠르게 전송되며 국경 제약이 없다. 이런 구조적 특징이 제재 회피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란은 여기에 더해 국가 차원의 비트코인(BTC) 활용도 확대하고 있다. 4월 초에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에 대해 통행료를 비트코인으로 지불하도록 요구하며, 암호화폐를 ‘국가 무역 인프라’에 편입시키는 움직임까지 보였다.
한편 IRGC는 보조금이 지급되는 전력을 활용해 비트코인 채굴에 나서고 있다. 채굴된 신규 BTC는 거래 이력이 없어 추적이 어려운 ‘클린 자산’으로 분류되며, 제재 대상 식별을 우회하는 데 유리하다. 사실상 에너지를 제재 불가능한 ‘현금성 자산’으로 전환하는 구조다.
온체인 제재에도 남은 ‘추적 공백’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동결된 자산이 이란의 석유 거래 위장 결제와 연관된 USDT 지갑이라고 밝혔다. 테더 측도 해당 주소를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베센트 장관은 “이란이 해외로 빼돌리려는 자금을 끝까지 추적하고 모든 금융 생명줄을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온체인 데이터에서는 여전히 허점이 드러난다. 2월 말부터 3월 초 사이 미·이스라엘 군사 행동 직후, 이란 관련 비트코인 지갑에서 약 1,030만 달러 규모 자산이 외부로 이동한 것이 포착됐다. 일부 지갑은 IRGC 관련 주소와 연결된 이력이 확인되며, ‘국가 수준 자금 이동’이 실시간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또 2025년 6월 이스라엘과의 충돌 이전, 이란 거래소 노비텍스에서는 자금 유출이 150% 급증했고, 공격 직후에는 700%까지 치솟았다. 9,000만 달러 규모 해킹 피해에도 이용자 거래는 지속되며 생태계가 충격을 흡수한 점도 눈에 띈다.
결국 암호화폐는 이란에 있어 단순한 우회 수단을 넘어 ‘전략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 규제당국 역시 이에 대응해 제재 범위를 가상자산 서비스 업체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까지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온체인의 구조적 특성상 완전한 차단이 쉽지 않아, 제재와 우회 간 ‘추격전’은 계속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