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BTC) 보유자들의 자산 보호가 시급해질지도 모른다. 양자 컴퓨터의 발전이 비트코인 공급량의 25%를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개발자들이 비트코인의 핵심 암호 기술을 대체할 양자 저항성 업그레이드를 제안하고 나섰다.
비트코인 개인 지갑 서비스를 제공하는 카사(Casa)의 CTO이자 공동 창립자인 제임슨 롭(Jameson Lopp)은 최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퀀텀 비트코인 서밋’에서 이 같은 제안이 담긴 비트코인 개선 제안서(BIP)를 공개했다. 그는 현재 비트코인의 서명 방식(ECDSA 및 슈노르 서명)이 향후 크립토그래피적으로 강력한 양자 컴퓨터에 의해 손상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대규모 손실 가능성을 경고했다.
BIP에 따르면, 공용 키가 체인에 노출된 UTXO 비트코인은 전체 공급량의 약 25%, 즉 약 400만 BTC에 달하며, 여기에는 사토시 나카모토가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100만 BTC도 포함된다. 현재 시세 기준 이들 자산은 약 1,112조 원의 가치가 있다.
해당 제안은 세 단계에 걸친 시스템 업그레이드로 위험을 줄이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사용자들이 기존 주소 대신 P2QRH라는 양자 저항형 주소로만 비트코인을 보낼 수 있도록 제한한다. 이후 2년 뒤엔 해당 주소로 자산을 이관하지 않은 사용자들의 BTC를 자동 동결시키는 조치를 취한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동결된 자산을 BIP-39 시드 구문을 통해 복구할 수 있는 방안이 연구 중이다.
롭은 이 계획이 비트코인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인센티브 메커니즘’이라고 설명했다. 보유자가 별도 대응 없이 그대로 둔다면 자산 접근이 영영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경고를 통해 스스로 보안 업그레이드를 하도록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롭과 함께 계획을 공동 수립한 다른 5명의 개발자들도 이 제안에 힘을 보탰다. 개발자들은 "비트코인이 암호학적 근간 자체에서 존폐 위기를 맞이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실제 양자 공격이 발생할 경우 시장 전반에 걸친 심각한 경제 혼란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딜로이트가 진행한 과거 연구에 따르면, 양자 공격으로 취약한 BTC가 시장에 대량 매도될 경우 극심한 투매 사태, 즉 ‘청산 이벤트’가 벌어질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롭은 “만약 양자 공격이 성공해 자금이 해킹된다면, 수조 원대 물량이 시장에 쏟아져 나와 비트코인 가격은 큰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양자 컴퓨팅 보안 전문가 그룹인 프로젝트 일레븐(Project Eleven) 역시 최근 비트코인 블록체인의 실제 보안 수준을 실험하는 공모전 개최를 발표했다. 이들은 현재까지 공개 키가 노출된 비트코인 주소 수가 1,000만 개 이상이며, 해당 지갑에 6.2백만 BTC(약 866조 원) 이상이 담겨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온체인 분석업체 크립토퀀트(CryptoQuant)는 양자 위협이 단순히 지갑 보안에만 국한되지 않고 비트코인 채굴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해킹 가능성이 커질 경우 암호화폐 신뢰 기반이 흔들리고, 채굴자들의 운영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번 제안은 곧바로 도입되지는 않겠지만, 업계 전반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은 아직 대비할 시간적 여유가 있다”며, “비트코인 생태계가 양자 컴퓨팅 시대에도 안전하게 존속하려면 지금부터 기술적 대응과 사용자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자 컴퓨터의 성능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만큼, 비트코인 보유자들의 자산 안전도 새로운 차원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암호화폐 업계가 이 경고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향후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가르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