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제은행(BIS) 이코노미스트들은 인공지능(AI) 투자 열풍이 경기와 물가의 실제 흐름을 가려 중앙은행의 금리 판단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경고했다. 눈에 보이는 성장 지표는 강해 보여도 그 배경이 일시적인 투자 확대와 자산 가격 상승에 따른 착시일 수 있어, 통화정책이 엇나갈 위험이 커졌다는 뜻이다.
29일 연합뉴스가 인용한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BIS 측은 월례 게시판 분석에서 AI가 투자와 무역, 자산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이미 세계 경제 전망을 좌우할 정도로 커졌다고 진단했다. 무역 갈등과 지정학적 충격 같은 악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성장세가 버틸 수 있었던 배경에 AI 관련 자금 유입이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데이터센터와 정보기술(IT) 제조시설 투자 지출이 국내총생산(GDP)의 0.8% 수준까지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문제는 이런 흐름이 물가에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쪽에서는 AI 관련 설비 투자와 주가 상승이 소비를 자극해 물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 주가가 오르면 가계가 자산이 늘었다고 느껴 소비를 더 하는데, 이를 자산 효과라고 부른다. 반대로 AI가 생산성을 높여 기업의 비용 부담을 낮추거나, 일자리 불안이 커져 소비가 위축되면 물가를 낮추는 디스인플레이션(물가 상승률 둔화)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같은 AI 붐이 경기 과열과 물가 안정이라는 상반된 결과를 동시에 낳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BIS는 중앙은행이 가장 어려워하는 지점이 바로 이런 효과의 크기와 시점을 가늠하는 일이라고 짚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높은 GDP 성장률이 장기적인 생산성 개선을 뜻하는지, 아니면 일시적인 투자 붐의 결과인지는 당장 판단하기 쉽지 않다. 생산성 향상은 경제의 체질이 좋아졌다는 의미지만, 측정에 시간이 걸리고 불확실성도 크다. 반면 단기적인 수요 증가는 지표에 빨리 반영되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이를 잘못 읽으면 금리 수준을 지나치게 낮게 유지할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들은 결국 AI가 만들어내는 단기 인플레이션 압력은 이미 나타나고 있을 수 있지만, 생산성 개선에 따른 물가 안정 효과는 더 천천히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중앙은행이 생산성 향상을 과대평가하거나 실제 수요 증가를 과소평가하면 물가를 제때 잡지 못하는 정책 오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 주요국 중앙은행이 성장률이나 주가 같은 겉지표보다 투자 성격, 고용 변화, 생산성 개선의 지속성까지 함께 따져가며 더 신중하게 통화정책을 운용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