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캐피탈 업계가 자금 회수 속도의 둔화를 겪는 가운데, 대형 투자사들이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모펀드에서 활용되던 ‘컨티뉴에이션 펀드(Continuation Fund)’ 전략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장기 보유 자산에 대한 회수 여력 확보와 함께 투자자 수익 실현을 가능케 하는 이 펀드 구조가 새로운 투자 사이클의 돌파구로 주목받고 있다.
컨티뉴에이션 펀드는 기존 펀드의 종료 시점이 임박했음에도 유망 포트폴리오 기업이 여전히 성숙 단계에 이르지 못한 경우, 해당 자산을 별도 신규 펀드로 이전해 투자기간을 연장하는 방식이다. 사모펀드 업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채택된 모델이지만, 최근 들어 벤처 투자사들도 이 구조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특히 투자 자산이 다양하고 자금 출구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이 전략은 유연한 투자 관리 방식으로 부상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소재 법무법인 시들리 오스틴(Sidley Austin)의 파트너 셰인 구디(Shane Goudey)는 “사모펀드에선 익숙한 유동성 관리 수단이 이제 벤처펀드로 확산되고 있다”며, “벤처펀드도 보다 정교하고 전략적인 자산 운용이 요구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벤처펀드의 가장 큰 고민은 유동성 압력이며, 이는 펀드 운용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강조했다.
벤처 캐피탈 펀드들은 통상 10년 만기의 구조를 갖고 있지만, 최근 수년간 수조 원 단위의 대규모 펀드가 증가하면서 자금 회수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있다. 2022년 앤드리센 호로위츠는 전체 세 개 펀드에서 90억 달러(약 1조 2,960억 원), 라이트스피드는 67억 달러(약 9,650억 원)를 모금했다. 이어 2023년에는 뉴엔터프라이즈어소시에이츠(NEA)가 두 개 펀드에서 62억 달러(약 8,930억 원)를 조달했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분배할 수단으로 컨티뉴에이션 펀드가 다시금 각광받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라이트스피드와 NEA를 비롯한 주요 벤처 투자사들이 컨티뉴에이션 펀드 전략을 본격적으로 도입 중이다. 인사이트 파트너스는 2024년 10월, 하버베스트 파트너스를 주도 투자자로 삼아 15억 달러(약 2조 1,600억 원) 규모의 세 번째 컨티뉴에이션 펀드를 결성했다.
다만 이 구조는 소형 벤처펀드에겐 쉽지 않은 선택이다. 법률 자문, 밸류에이션 보고, 기존 투자자의 동의 확보 등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에 작은 운용사들은 포트폴리오 기업 일부를 2차 시장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유동성을 확보하는 편이 현실적이다.
이 같은 전략의 대중화는 곧 ‘벤처펀드의 사모펀드화(PE-ification)’를 의미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들리 오스틴의 마튜 이펜(Mathew Eapen) 파트너는 “컨티뉴에이션 펀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사모펀드에서 먼저 자리 잡았고, 2016~2019년 사이 급속히 확대됐다”며, “벤처펀드는 포트폴리오가 100개 이상으로 복잡해 초기엔 도입에 소극적이었지만, 최근엔 상황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컨티뉴에이션 펀드를 설정하기 위해서는 운용사가 투자자문사 등록을 마쳐야 하며, 별도의 신규 펀드를 구성하고 자산 이관 및 신규 매수자를 확보해야 한다. 기존 투자자들은 기존 지분을 유지하거나 전부/일부 매각, 추가 투자 등 다양한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은 법률적, 회계적, 기술적으로 매우 복잡하며, 다수의 자문기관 및 전문가가 필요한 *고부담* 구조다.
전문가들은 이 전략이 시장에서 더 빠르게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펜은 “2차 매수자의 수가 늘고, 시장에서 이 전략이 받아들여지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진입 장벽은 점점 낮아질 것”이라며 “벤처 시장에 남은 유동성 공백을 채울 중요한 수단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벤처 업계의 출구 전략이 제한되면서 컨티뉴에이션 펀드는 자산 수명을 연장하고, 투자자들에는 일정 수준의 유동성을 돌려줄 수 있는 유력한 선택지로 부상하고 있다. 벤처 캐피탈의 투자 방식이 점점 전통 사모펀드의 구조적 장점들을 흡수해가는 가운데, 이러한 변화는 향후 벤처 시장 전반의 생태계를 재편할 수 있는 기점이 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