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다음 10년을 바꿀 기술이라는 데 이견은 없다. 그런데 지금 AI에 쏟아지는 돈의 규모를 보면 다른 질문이 떠오른다. 과연 이 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가.
알파벳·아마존·메타·마이크로소프트 4개사가 2026년 AI 인프라에 쏟아붓는 돈은 6300억 달러(약 870조원)를 넘어선다. 아마존 혼자만 해도 약 2000억 달러(약 276조원)다. 이 기업들은 2025년에만 1210억 달러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는데, 이는 2020~2024년 연평균의 네 배가 넘는다.
여기서 한 가지 불편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거대한 투자가 진짜 수요를 반영하는 것인지, 아니면 오랫동안 지속된 저금리가 만들어낸 '통화적 환상'은 아닌지.
■ 저금리가 뿌린 씨앗
경제학의 오스트리아학파는 오래전부터 경고해왔다. 금리가 자연 수준보다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되면, 기업들은 실제 저축과 수요가 뒷받침하기 어려운 장기·대규모 프로젝트에 과도하게 달려든다는 것이다. 붐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잘못 놓인 자본의 실체가 드러난다.
연준은 코로나19가 덮친 2020년 3월 기준금리를 0~0.25%로 내렸다. 이 수준을 2022년 3월까지 유지했다. 같은 기간 미국의 '자연이자율'은 오히려 약 1%포인트 올라가 있었다. 즉 AI 붐의 씨앗이 뿌려진 시기는 자본이 실제보다 훨씬 싸 보이던 시절이었다.
지금 금리는 3.5~3.75%까지 올랐지만, 문제는 이미 그 씨앗이 움터 무성하게 자라난 뒤라는 점이다.
■ 수익은 어디에
AI 사용자는 분명 늘고 있다. 챗GPT 주간 사용자는 9억 명을 넘었고, 오픈AI의 연환산 매출은 2025년 2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좁은 영역에서는 생산성 향상도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청구서가 수익보다 훨씬 빨리 쌓인다는 것이다. 컨설팅 기업 베인은 2030년까지 AI 산업이 예상 컴퓨팅 수요를 충당하려면 연간 2조 달러의 매출이 필요한데, 약 8000억 달러의 공백이 생길 것이라고 추산했다. 오픈AI는 1조4000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 약정을 논의 중이며, 앤트로픽은 500억 달러의 데이터센터 계획을 발표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미 전력망 연결 지연, 변압기 부족, 인허가 병목을 경고하고 나섰다. 데이터센터를 지을 땅과 전기가 부족한 상황에서 투자만 앞서 달리고 있는 셈이다.
■ 자본은 왜 폭주하는가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들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단순한 고평가가 아니라 '자본 구조의 미스코디네이션'이다. 서로 맞물려야 할 자본들이 엇박자로 공급되는 현상이다.
칩은 회계장부보다 빠르게 경제적 가치를 잃고, 전력망 확충은 수년씩 지연되며, 오픈소스 모델은 기업들의 가격 결정력을 갉아먹는다. 기업 고객들은 AI 시연에는 열광하면서도 실제 비용 지불은 머뭇거린다. 이 모든 조건이 동시에 작동할 때, ABCT가 말하는 고전적 과잉투자 문제가 터진다.
값싼 돈이 명성 경쟁, 뒤처질 수 있다는 공포(FOMO), 그리고 '미래'라는 도덕적 명분과 결합할 때 자본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폭주한다고 이 이론은 말한다.
■ 한국 기업·투자자에겐
이 논의는 한국과 직결된다.
SK하이닉스·삼성전자의 고대역폭메모리(HBM)는 AI 인프라 붐의 핵심 수혜 품목이다. 그러나 하이퍼스케일러들이 설비투자를 줄이기 시작하면 메모리 수요 충격은 곧바로 한국 수출 전반을 강타한다. 2022년 메모리 다운사이클은 그 경로를 이미 보여준 바 있다.
변압기·전력 케이블 등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 관련 국내 기업들도 수혜 가능성이 있지만, IEA가 지적한 공급 병목이 언제 풀릴지가 관건이다. 수주 시점과 실적 실현 시점 사이의 시차 리스크를 간과해선 안 된다.
국내 AI 테마주 중에는 '변혁적'이라는 단어만으로 밸류에이션이 정당화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저금리가 만들어낸 통화적 환상이 아직 걷히지 않은 증거일 수 있다.
■ 혁신과 과잉은 공존한다
AI가 허상이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AI는 생산 구조를 재편하고 노동시장을 뒤흔들 잠재력을 가진 기술이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 투자된 모든 돈이 현명하게 쓰이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탁월한 기술도 과잉 자본화될 수 있고, 과잉 약속될 수 있으며, 통화적 환상이 만들어낸 가격에 매입될 수 있다.
실망이 온다면, 그것은 AI가 가짜였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진짜 혁신도 잘못된 시점에 잘못된 방식으로 지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역사는 그 이야기를 수없이 반복해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