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큰포스트는 AI 자동매매·노드 판매·DAO·해외 거래소 레퍼럴 등으로 포장돼 국내 투자자를 유인하는 신종 코인 다단계형 판매 구조를 연속 추적한다. 본 연재의 관련 기사와 제보 안내는 토큰포스트 코인 다단계 토픽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편집자주]
“아는 사람이 소개해줬다.”
코인 다단계형 피해자들이 가장 자주 하는 말이다. 낯선 광고를 보고 들어간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사기라고 의심되는 사이트에 돈을 보낸 것도 아니다. 지인이 말했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 설명했다. 보험을 맡겼던 설계사가 권했다. 동문 모임에서 들었다. 교회 모임에서 소개받았다. 은퇴자 단체방에서 누군가 수익 인증을 올렸다.
그래서 믿었다.
최근 국내에서 확산되는 코인 다단계형 판매망은 불특정 다수를 향한 공개 광고보다 지인망에 강하다. AI 자동매매, 노드 채굴, DAO 참여, 해외 거래소 레퍼럴, 생활형 멤버십이라는 포장은 계속 바뀌지만 투자자가 유입되는 길은 크게 다르지 않다. 카카오톡방, 텔레그램방, 오프라인 설명회, 보험·금융 영업망, 동문회, 지역 커뮤니티, 종교 모임이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다. 관계다.
피해자는 백서를 믿은 것이 아니라 사람을 믿었다.

지인 소개는 가장 강한 보증서다
코인 다단계형 판매망이 지인망을 파고드는 이유는 단순하다. 모르는 사람이 권하면 광고지만, 아는 사람이 권하면 조언처럼 들린다. 같은 말이라도 신뢰의 농도가 다르다.
“이거 괜찮다.”
“나도 들어갔다.”
“이미 매일 들어오고 있다.”
“대표를 직접 만났다.”
“이번 라운드만 지나면 가격이 오른다.”
“너한테만 먼저 알려주는 거다.”
이 말들은 백서보다 강하다. 투자자는 프로젝트의 법인 소재지, 토큰 컨트랙트, 유동성, 락업, 신고 여부를 따지기 전에 소개자의 얼굴을 본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이라면 의심은 더 낮아진다. 관계가 검증을 대체하는 순간 위험은 시작된다.
특히 코인 다단계형 판매망은 “지인이 이미 돈을 벌었다”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단체방에는 수익 인증이 올라온다. 지갑 화면이 공유된다. 토큰 지급 내역이 캡처된다. 설명회에서는 먼저 들어간 참여자가 성공 사례로 소개된다. 투자자는 그 장면을 보고 생각한다. “저 사람이 받았으니 나도 받을 수 있겠다.”
그러나 초기 지급은 구조의 안전성을 증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규 투자자를 안심시키는 비용일 수 있다. 이 바닥에서 첫 입금보다 무서운 것은 첫 수익 인증이다. 한 번 받으면 의심이 잠든다.
왜 보험·FP·은퇴자 네트워크인가
제보 자료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경로는 보험설계사, FP, 은퇴자 모임, 지역 리더, 동문회, 교회, 골프 모임, 단체 카카오톡방이다. 이들은 모두 공통점이 있다. 돈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관계망이다.
보험설계사와 FP는 고객의 자산 상황을 어느 정도 안다. 은퇴자 모임은 노후 소득에 관심이 크다. 동문회와 지역 모임은 신뢰가 있다. 교회나 종교 모임은 관계의 결속력이 강하다. 골프 모임은 고액 자산가가 섞이기 쉽다. 이런 네트워크는 코인 프로젝트가 직접 광고로 얻기 어려운 신뢰를 제공한다.
특히 은퇴자와 고령층은 “매일 지급”, “월 배당”, “노후 연금”, “원금 회수”, “상장 후 수익” 같은 표현에 취약하다. 정기 소득에 대한 욕구가 크고, 복잡한 기술 검증은 어렵다. 판매자는 이 지점을 파고든다. AI, 노드, DAO, DePIN 같은 어려운 단어를 앞에 세우고, 뒤에서는 아주 쉬운 말을 한다.
“매일 들어옵니다.”
“몇 달이면 원금 회수합니다.”
“사람 소개하면 더 빨리 멘징합니다.”
복잡한 기술을 가장 단순한 욕망으로 번역하는 것이다. 영업은 친절하고, 구조는 차갑다.
피해자는 투자자가 아니라 판매자로 바뀐다
코인 다단계형 판매망의 무서운 지점은 투자자가 어느 순간 판매자가 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돈을 넣는다. 이후 수익 인증을 본다. 조금 더 넣는다. 그러다 주변 사람을 소개한다. 소개 보상이 붙는다. 등급이 오른다. 하위 회원 실적이 생긴다.
이때부터 피해자는 단순 피해자가 아니다. 본인도 모르게 판매망의 일부가 된다. 그래서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본인이 손실을 입었더라도, 자신이 데려온 사람에게는 가해자로 보일 수 있다. 관계망이 그대로 피해망이 된다.
이 구조는 신고를 어렵게 만든다. 지인을 신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족에게 말하기도 어렵다. “왜 그런 걸 믿었느냐”는 말을 들을까 두렵다. 내가 소개한 사람이 손실을 봤다면 죄책감도 따라온다. 그래서 피해자는 단체방을 나가지 못하고, 판매자의 공지를 기다린다. “상장 일정이 밀렸다”, “지갑 점검 중이다”, “본사 정책이 바뀌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말을 믿고 싶어진다.
기다림은 피해를 키운다. 하지만 피해자는 기다릴 수밖에 없다. 기다리지 않으면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체방은 신뢰 제조기다
카카오톡방과 텔레그램방은 단순한 소통 창구가 아니다. 코인 다단계형 판매망에서는 신뢰를 제조하는 공간이다.
방장은 공지를 올린다. 리더는 설명한다. 먼저 들어간 사람은 수익 인증을 올린다. 새로 들어온 사람은 질문한다. 누군가 의심을 제기하면 “공부가 부족하다”, “부정적인 말 하지 말라”, “나갈 사람은 나가라”는 반응이 나온다. 방의 분위기는 점점 폐쇄적으로 변한다.
이 공간에서는 반대 의견이 사라지고, 성공 사례만 남는다. 투자자는 자신이 다수의 판단을 따르고 있다고 느낀다. 실제로는 같은 판매망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반복해서 듣고 있을 뿐이다. 여론처럼 보이지만 영업 소음일 수 있다.
단체방의 또 다른 기능은 긴박감 조성이다. “오늘 마감”, “이번 라운드 종료”, “다음 가격 인상”, “선착순 물량”, “상장 전 마지막 기회” 같은 메시지가 반복된다. 투자자는 검토할 시간을 빼앗긴다. 좋은 투자는 시간을 줘도 남는다. 나쁜 영업은 시간을 빼앗아야 팔린다.
‘아는 사람’이 법적 책임을 흐린다
지인망 판매는 법적 책임도 흐린다. 공식 프로젝트는 “국내 영업을 승인한 적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국내 모집책은 “나는 소개만 했다”고 말한다. 단체방 리더는 “투자는 본인 판단”이라고 말한다. 피해자는 결국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 행위가 단순 소개를 넘어섰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가입 링크를 제공하고, 추천코드를 등록하게 하고, 원화 입금이나 USDT 대리구매를 도와주고, 지갑 생성과 결제 절차를 안내하고, 하위 회원 모집에 따른 보상을 받았다면 단순한 정보 공유라고 보기 어렵다.
금융정보분석원(FIU)은 텔레그램·오픈채팅방·유튜브·SNS 등에서 활동하는 불법 가상자산 취급업자가 증가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FIU는 내국인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가상자산 취급업자 중 신고된 사업자 외에는 불법 사업자에 해당할 수 있으며, 신고 없이 스테이블코인 등 가상자산을 매매·교환하거나 중개·알선하는 행위도 불법행위로 지적했다. 또 한국어 홈페이지 제공, 원화결제 지원, 한국인 고객 유치 이벤트와 마케팅 등을 영업성 판단 요소로 제시했다.
이 경고는 지인망 영업과 맞닿아 있다. 공개 홈페이지가 없어도 카카오톡방과 텔레그램방에서 국내 투자자를 반복적으로 모집하고, 결제와 가입을 도와주고, 추천 보상을 받는다면 규제 사각지대라고 보기 어렵다. 이름은 소개지만 실질은 영업일 수 있다.
다단계성은 ‘상품명’이 아니라 보상 구조에서 나온다
코인 다단계형 판매망은 상품명을 자주 바꾼다. 토큰, 노드, 채굴권, DAO 참여권, 멤버십, 포인트, 리워드, 거래소 수수료 페이백, AI 구독권. 이름은 계속 바뀐다. 그러나 다단계성은 이름에서 나오지 않는다. 보상 구조에서 나온다.
방문판매법은 방문판매, 전화권유판매, 다단계판매, 후원방문판매 등에서 소비자의 권익 보호와 공정한 거래를 목적으로 한다. 또 재화 또는 용역에는 일정한 시설을 이용하거나 용역을 제공받을 수 있는 권리도 포함된다. 즉 “실물 상품이 아니다”라는 말만으로 법적 검토를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코인 판매망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위 회원을 모집하고, 그 회원의 구매액이나 거래액에 따라 상위 참여자가 보상을 받는다면 구조를 봐야 한다. 직접 추천, 간접 추천, 팀 실적, 소실적, 리더 수당, 센터장 수당, 플랫폼 배당 같은 표현이 붙는 순간 단순 투자 권유와는 성격이 달라진다.
상품명이 AI든 DAO든 노드든 상관없다. 돈을 넣고, 사람을 데려오고, 아래 조직 실적에 따라 위 조직 보상이 커진다면 독자는 그것을 피라미드로 이해한다. 법률 용어가 무엇이든, 현장의 직감은 대체로 맞다.
피해가 늦게 드러나는 이유
지인망 피해는 늦게 드러난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초기에는 실제 보상이 지급될 수 있다. 토큰이 들어오고, 포인트가 쌓이고, 수수료가 환급된다. 투자자는 안심한다. 둘째, 지인 관계 때문에 의심을 공개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소개자를 믿고 들어왔고, 자신도 누군가를 데려왔기 때문이다. 셋째, 판매망은 시간을 끈다. 상장 지연, 시스템 점검, 지갑 업그레이드, 규제 대응, 본사 정책 변경 같은 설명이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빠져나올 타이밍을 놓친다. 출금이 막혔을 때도 “조금만 기다리라”는 말을 듣는다. 환불을 요구하면 “지금 나가면 손해”라는 말이 돌아온다. 의심을 제기하면 “부정적인 사람이 분위기를 망친다”는 압박을 받는다.
피해자는 돈만 잃는 것이 아니다. 관계도 잃는다. 소개한 사람과 틀어지고, 소개받은 사람에게 원망을 듣고, 가족에게 숨기게 된다. 그래서 피해는 장부에 적힌 금액보다 크다. 코인 잔고는 0이 되지만, 인간관계 손실은 지갑에 표시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아프다.
법이 있어도 미확인 사업자는 보호 밖에 있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은 이용자의 예치금과 가상자산 보호, 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행위 조사·처벌, 금융당국의 감독·검사·제재 권한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금융위원회는 가상자산사업자가 이용자 예치금을 은행에 보관·관리하고, 자기 가상자산과 이용자 가상자산을 분리 보관해야 하며, 해킹·전산장애 등에 대비한 보험 가입 또는 준비금 적립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같은 자료에서 금융당국은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가상자산의 안전성 자체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며, FIU에 신고된 가상자산사업자가 아닌 미확인 사업자를 통한 거래나 개인 간 장외거래는 시장감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피해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불공정거래 의심사례는 금융감독원 신고센터에 제보하고, 사기 의심 행위는 수사기관에 신고할 필요가 있다고도 안내했다.

지인망 코인 영업의 위험은 바로 여기에 있다. 투자자는 “아는 사람이 소개했으니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거래는 신고·감독 체계 밖의 해외 플랫폼, 개인 지갑, 대리구매 창구, 비공식 판매망에서 이뤄질 수 있다. 문제가 생기면 국내 제도권 보호 밖에 놓인다.
친한 사람이 소개했다고 해서 플랫폼이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신뢰는 관계에서 나오지만, 보호는 제도에서 나온다.
지인망 판매의 위험 신호
투자자가 주변 사람에게 코인 투자나 노드·DAO·AI 자동매매·해외 거래소 가입을 권유받았다면 다음 신호를 확인해야 한다.
첫째, “너한테만 먼저 알려준다”는 말로 시작한다.
둘째, 공식 홈페이지보다 단체방과 설명회 자료를 먼저 보여준다.
셋째, 수익표, 등급표, 추천 보상표가 백서보다 앞선다.
넷째, 원화 입금, USDT 대리구매, 지갑 생성을 모집자가 도와준다.
다섯째, 가격 인상·라운드 마감·한정 수량으로 결정을 재촉한다.
여섯째, “매일 지급”, “원금 회수”, “노후 연금”, “상장 후 몇 배”를 강조한다.
일곱째, 하위 회원을 데려오면 보상이 커진다.
여덟째, 손실 가능성보다 성공 사례와 수익 인증만 반복한다.
아홉째, 국내 판매자가 공식 승인된 주체인지 확인되지 않는다.
열째, 문제 제기자를 단체방에서 배척하거나 침묵시킨다.
이 중 여러 항목이 동시에 등장한다면 단순한 투자 권유가 아니다. 지인망을 이용한 코인 다단계형 판매 구조일 가능성이 크다.
취재의 핵심은 피해자의 말보다 ‘관계의 흐름’이다
지인망 코인 영업을 취재할 때는 피해 금액만 보면 부족하다. 누가 누구를 소개했는지, 어떤 단체방에서 시작됐는지, 첫 설명은 어디서 들었는지, 결제는 누가 도와줬는지, 추천코드는 누구에게 귀속됐는지, 하위 회원 보상은 어떻게 지급됐는지 확인해야 한다.
중요한 증거는 다음과 같다. 단체방 초대 경로, 설명회 참석 자료, 녹취, 보상표, 추천코드, 결제 안내문, 원화 입금 계좌, USDT 송금 내역, 지갑 주소, 출금 지연 화면, 환불 요청 내역, 판매자 답변이다.
특히 피해자가 여러 명이라면 관계도를 그려야 한다. 소개자, 상위 리더, 방장, 강사, 국내 총판, 해외 플랫폼, 수취 지갑을 연결하면 구조가 보인다. 프로젝트명보다 관계망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이름은 바뀌어도 사람은 반복된다.
결론: 피해자는 바보가 아니라 관계를 믿은 사람이다
코인 다단계형 피해자를 “왜 속았느냐”고 비난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피해자는 기술을 잘 몰랐을 수 있다. 하지만 완전히 낯선 사람을 믿은 것은 아니다. 가족, 친구, 동문, 설계사, 교인, 지역 리더, 사업 파트너를 믿었다. 그 신뢰가 영업 도구로 쓰인 것이다.
그래서 이번 문제의 본질은 특정 코인 하나가 아니다. 지인망을 타고 반복되는 판매 구조다. AI, 노드, DAO, 거래소, 멤버십이라는 이름은 바뀌지만 경로는 같다. 신뢰를 빌리고, 수익을 약속하고, 사람을 데려오게 만들고, 문제가 생기면 책임은 흐린다.
투자자가 물어야 할 질문은 “누가 소개했느냐”가 아니다.
누가 돈을 받는가.
누가 수수료를 가져가는가.
누가 하위 회원 보상을 받는가.
누가 출금을 책임지는가.
누가 공식 판매자인가.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구를 상대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 소개했더라도 멈춰야 한다. 지인이 보증서가 될 수는 없다. 특히 그 지인도 구조를 모른다면 더 그렇다.
이름은 AI이고, 설명은 노드와 DAO다. 그러나 입구가 지인망이고, 구조가 추천과 등급과 하위 실적으로 굴러간다면 본질은 분명하다. 코인 다단계는 기술보다 관계를 먼저 판다. 그리고 마지막에 무너지는 것도 돈보다 관계다.
다음 편 예고
[코인 다단계 2.0] ⑦ 규제 사각지대의 코인 다단계
다음 편에서는 AI·노드·DAO·해외 거래소·지인망이 결합된 신종 코인 판매망을 현행 법체계가 어디까지 잡을 수 있는지 살펴본다. 특금법상 미신고 가상자산 영업, 유사수신, 방문판매법상 다단계성, 자본시장법상 투자계약증권 가능성까지 규제의 경계를 추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