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이 정부로부터 권고받은 위약금 면제 조치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하면서, 통신 소비자 보호와 기업 부담 간의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방송통신위원회 산하 통신분쟁조정위원회는 최근 SK텔레콤에 대해 연말까지 이동통신 서비스 해지 시 위약금을 전액 면제하고, 유선 인터넷이나 IPTV 등 결합 상품의 경우에도 소비자가 부담한 위약금의 절반을 환급하라는 직권 조정 결정을 내렸다. 이는 지난 4월 발생한 사상 최대 규모의 해킹 사고로 SK텔레콤 가입자 2천300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데 따른 후속 대응이었다.
그러나 SK텔레콤은 통신분쟁조정위가 정한 회신 기한인 9월 3일까지 이 권고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이는 사실상 권고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법적 구속력이 없는 행정 조정을 기업이 거부한 셈이다. SK텔레콤 측은 이번 결정이 기업에 미치는 재정적 파장뿐 아니라 유사 소송이나 대규모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통신업계는 애초부터 SK텔레콤이 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전망해 왔다. 실제로 SK텔레콤은 해킹 사고 대응 과정에서 이미 소비자 보상금 5천억 원과 정보보호 강화 비용 7천억 원 등 약 1조 2천억 원을 들인 데 이어, 유심 교체와 점포 손실 보전비용으로도 2천500억 원을 지출했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수천억 원대로 추산되는 위약금 면제까지 부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안은 SK텔레콤만의 문제는 아니다. 통신분쟁조정위는 같은 날 KT에도 분쟁 조정을 권고했으나, KT 역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KT는 지난 1월 갤럭시 스마트폰의 사전예약 과정에서 ‘선착순 1천명’ 고지를 누락하고 임의로 예약을 취소해 논란을 빚었는데, 이에 대해 조정위는 예약이 취소된 이용자에게도 동일한 혜택을 보장하라고 권고했지만, KT는 일부 보상이 이뤄졌다는 이유로 수용을 거부했다.
이 같은 기업들의 조정안 불수용은 향후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현행 제도상 통신분쟁조정위원회의 결정은 당사자 양측이 모두 수락하지 않을 경우 효력을 갖지 못한다. 이에 따라 SK텔레콤과 KT의 이용자들은 직접 민사 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향후 이와 같은 사안이 반복될 경우, 소비자 보호 강화 차원에서 통신 관련 행정 조정의 실효성을 높이는 제도 개선이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한편으로는 기업 입장에서 대규모 사태에 따른 일방적 부담 전가는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