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첨단 기술과 배터리 생산 확대에 필수적인 희귀 금속과 희토류 원소는 공급이 제한된 자원이다. 리튬, 코발트, 니켈처럼 지리적으로 특정 지역에 집중된 자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그 중요성은 꾸준히 부각돼 왔다. 이러한 흐름 속에 대기업뿐 아니라 스타트업들도 희소 자원을 둘러싼 경쟁에 본격 참여하고 있으며, 최근 수 년간 이 분야에 대한 벤처 투자가 크게 늘어난 상황이다.
배터리 및 자석 재활용 기술부터 희토류 채굴, 심지어 우주에서 자원을 추출하는 기술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신생 기업들이 수억 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확보하며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최근 Crunchbase가 추린 데이터를 보면, 지난 1년 사이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12개 기업이 이처럼 제한된 자원의 생산 혹은 재활용을 위해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지금까지 확보된 벤처 자금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은 재활용 부문에 집중됐다. 미국 매사추세츠의 Ascend Elements와 네바다에 본사를 둔 Redwood Materials는 각각 폐기된 배터리와 전자 장치에서 귀중한 금속을 추출하는 기술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두 회사가 모은 누적 자금은 지분 투자 30억 달러(약 4조 3,200억 원), 부채 포함 40억 달러(약 5조 7,600억 원)에 달한다.
다만 이들 기업의 대부분 자금 조달은 2021년~2023년 사이, 클린테크 투자 열기가 절정일 때 성사됐다. 이후 탄소중립에 역행하는 정책 기조가 확산되며 특히 미국 내에서는 지속가능성 중심의 투자가 눈에 띄게 위축됐다. 트럼프 대통령 행정부의 재집권 이후 청정 에너지 산업에 대한 정책적 뒷받침이 줄어들면서 관련 스타트업들의 자금 유치가 한층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반면 미국 외 지역에서는 여전히 활발한 투자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캐나다 소재 사이클릭 머티리얼즈(Cyclic Materials)는 지난 6월 퀘벡주 킹스턴에 희토류 재활용 거점을 마련하는 데 필요한 2,500만 달러(약 360억 원)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독일에서는 Cylib이 폐배터리에서 희귀 금속을 추출하는 기술로 6,400만 달러(약 920억 원)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고, 뮌헨의 Tozero는 시드 라운드에서 1,200만 달러(약 170억 원)의 자금을 조달해 자체 설비 확장을 추진 중이다.
한편 채굴 분야도 여전히 활기를 띠고 있다. 미국 유일의 희토류 광산을 운영 중인 MP 머티리얼즈(MP Materials)는 최근 미 국방부로부터 지분 투자를 유치했다. 라스베이거스에 본사를 둔 이 회사는 캘리포니아 마운틴 패스 지역에서 채굴을 진행 중이며, 최근 애플(AAPL)이 텍사스에 위치한 MP 생산 설비에서 제작된 자석을 5억 달러(약 7,200억 원) 규모로 구매하겠다고 밝히며 주가가 급등했다.
MP 머티리얼즈는 2020년 SPAC(기업인수목적회사) 합병 형태로 상장하며 시리콘밸리의 벤처 캐피털 리스트와 협력해 주목을 받았다. 이들이 개척한 길을 따라 새로운 채굴 스타트업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 몬트리올의 토르낫 머티리얼즈(Torngat Metals)는 최근 캐나다 정부로부터 1억 2,000만 달러(약 1,730억 원) 규모의 채무 자금을 확보해 북극권 인근 스트레인지 호수 광산 프로젝트에 투입할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는 야생 순록 보호 계획까지 포함해 탄소중립과 생태계 배려 측면에서도 각광받는 중이다. 또 다른 주목할 스타트업인 피닉스 테일링스(Phoenix Tailings)는 광산 폐기물에서 귀중한 금속과 희토류를 추출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올해 7,640만 달러(약 1,100억 원) 규모의 신규 투자를 유치했다.
미 증시가 사상 최고 수준을 경신하는 가운데, 희귀 금속과 배터리 원재료 분야 관련 주식들이 큰 수혜를 입고 있다. MP 머티리얼즈의 시가총액이 100억 달러(약 14조 4,000억 원)를 넘어서며 이 부문의 대표 주자로 부상했고, 이러한 흐름이 IPO와 M&A 시장으로 이어질 가능성에도 무게가 실리고 있다. 업계 전반이 빠르게 움직이는 시장은 아니지만, 제한된 자원을 둘러싼 투자 흐름에서는 분명 이미 바람이 방향을 바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