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반도체 소재로 주목받는 그래핀을 활용해 식중독 유발 질환인 ‘용혈성요독증후군’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다. 기존 검사보다 민감도가 1,000배 이상 높아, 감염 확산을 막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성균관대학교 권오석 교수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이무승 박사가 이끄는 공동 연구팀은 9월 9일, 그래핀 소재를 기반으로 극미량의 독소까지 검출할 수 있는 초민감 바이오센서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이 센서는 소량의 혈액이나 대변 샘플만으로도 정확하게 병원성 독소를 측정할 수 있어, 의료 현장에서 즉각적인 진단이 가능하다.
용혈성요독증후군은 흔히 ‘햄버거병’으로 불리며, 장내에 존재하는 장출혈성대장균(EHEC)이 분비하는 시가독소에 의해 발생한다. 주로 어린이에게 발병하며, 적혈구 파괴나 신장 기능 부전과 같은 치명적인 합병증을 초래할 수 있다. 증상이 복통·설사 등 일반 장염과 유사해 조기 진단이 쉽지 않다는 점이 문제였다.
이번에 개발된 바이오센서는 형광 표지자나 복잡한 시료 전처리 없이, 그래핀 센서에 전달되는 전기 신호 변화만으로 독소를 정확히 감지할 수 있다. 그래핀은 흑연에서 분리한 2차원 물질로, 전기 전도성이 매우 뛰어나 미세한 생리학적 변화를 민감하게 포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펨토그램(1천조분의 1그램) 수준의 독소도 탐지 가능할 만큼 민감도를 확보했다는 점이 주목받고 있다.
연구팀은 생쥐의 혈액과 배설물 등 생체 시료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한 결과, 시가독소를 실시간으로 검출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의 효소면역 분석법보다 민감도가 1,000배 이상 뛰어나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이는 현장 검사의 실용성을 크게 높이고, 대규모 식중독 사태 발생 시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게 해줄 수 있다.
이무승 박사는 “이 기술은 식중독 조기 대응체계 마련뿐 아니라, 향후 바이러스나 세균 감염 등 다양한 분야로의 확장이 가능하다”며, 공중보건 시스템 강화 및 진단기기 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술력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방향이라면, 고위험군이나 취약계층에 대한 예방적 진단 기술로 자리매김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