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실제 환경 속에서 물체를 안정적으로 집을 수 있도록 돕는 인공지능 학습용 데이터세트가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광주과학기술원 인공지능 융합학과 이규빈 교수 연구팀은 9일, 복잡한 현실 세계를 정밀하게 반영한 ‘그래스프클러터6D’ 데이터세트를 구축했다고 밝혔다.
로봇이 물체를 집는 능력, 즉 파지(把持)는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면서도 실제 적용이 어려운 분야 중 하나다. 기존의 학습용 데이터는 대부분 깔끔하고 단순한 실험실 환경을 가정해 제작됐다. 그러나 실제 산업 현장이나 일상 환경에서는 여러 종류의 물체가 서로 겹쳐 있거나 복잡하게 배치돼 있어, 이러한 조건에서는 로봇의 인식 및 조작 정확도가 크게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이번에 공개된 그래스프클러터6D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다. 연구팀은 상자, 탁자, 선반 등 75가지 다양한 환경을 구성하고, 로봇팔에 RGB-D(색상 및 깊이 정보 동시 획득) 카메라 4대를 장착해 총 1천 개의 장면에서 5만 2천 장의 고해상도 이미지를 수집했다. 데이터세트에는 총 200종의 실제 물체 3차원 모델 정보와, 6차원 좌표(위치 3축+회전 3축)에 기반한 물체 자세 73만 6천 개, 로봇 파지 자세 93억 개가 포함돼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데이터세트로 학습한 인공지능 모델은 실제 로봇 실험에서 뚜렷한 성능 향상을 보였다. 예를 들어, 단순한 환경(5개 물체 기준)에서는 집기 성공률이 기존 77.5%에서 93.4%로 높아졌고, 복잡한 환경(15개 물체 기준)에서는 54.9%에서 67.9%로 개선됐다. 이는 로봇이 실제 환경에서 보다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크게 높이는 성과다.
이 데이터세트와 관련 소프트웨어는 연구팀이 운영하는 웹사이트를 통해 전 세계 연구자들에게 무료로 공개된다. 이규빈 교수는 실제 환경을 충실히 반영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번 데이터세트가 피지컬 인공지능(현실 세계에서 스스로 학습하고 행동하는 AI)의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 특히 물류, 제조업, 생활 서비스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로봇 활용의 실질적인 확대를 뒷받침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놨다.
이와 같은 대규모 데이터 기반 로봇 AI 연구는 향후 자율주행, 스마트 팩토리, 무인 물류 시스템 등 차세대 산업 구조에 핵심 요소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크다. 데이터 생태계가 정교해질수록 로봇의 실용화 수준도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