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투자업이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고위험 업무의 효율화와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왔다.
김진영·노성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9월 10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AI와 금융투자업의 혁신’ 콘퍼런스에서, 현재 금융투자업 내에서 AI 기술 활용이 확산되고 있지만, 정작 그 가능성이 큰 고위험 영역에서는 도입이 극히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인수합병(M&A)이나 대규모 프로젝트 금융 등 금전적·법적 책임이 막대한 업무일수록 AI 도입이 더딘 실정이다.
연구진은 사모펀드, 부동산 분야 등 비공개 정보가 많은 영역일수록 AI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가 충분치 않아 기술 개발이 어렵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와 같은 분야에서는 관련 AI 특허 비중도 상대적으로 낮았다. 반면 AI 특허는 대부분 기업간거래(B2B) 스타트업 등 IT 기반 비상장 기업 위주로 출원되고 있으며, 정작 증권사나 대형 금융기관의 참여는 미미한 수준이다.
이 같은 배경에는 데이터 접근성 및 활용 역량의 격차가 자리 잡고 있다. 김 연구위원은 이를 해소하기 위해 고위험 부문에 특화된 AI 도입 가이드라인 수립과 파일럿 프로그램 운영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만약 이런 시범 사례가 성공적으로 축적된다면, 정부 주도의 디지털 혁신 정책 설계에도 구체적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AI 활용 시 책임소재 명확화, 오작동 대응방안 마련 같은 법적·제도적 기반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발표에 나선 또 다른 발표자인 권민경 연구위원은 미래의 금융투자는 AI에 의해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그는 단기적인 활용성에 얽매이기보다는 장기적인 기술 변화 흐름을 읽고, 양질의 데이터를 선제적으로 확보·축적하는 것이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AI가 광범위한 패턴을 인식하고 예측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데이터의 종류와 양이 핵심 변수이기 때문이다.
자본시장연구원 김세완 원장은 AI가 투자 전략, 리스크 관리, 개인 맞춤형 서비스 등에서 핵심 기술로 부상하고 있다면서도, 데이터 인프라와 컴퓨팅 자원, 명확한 AI 거버넌스 체계 구축 등 아직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고 평가했다. 그는 현재 자본시장 심리지수와 같은 비정형 데이터 기반의 분석 도구를 개발 중이라며, 이는 AI가 금융 의사결정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성과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흐름은 장기적으로 국내 금융투자업계의 기술 기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AI의 잠재력을 제도화된 환경 안에서 실현하기 위해 정부, 금융사, 기술기업 간 유기적인 협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데이터 기반 인프라 확대와 정책적 유인이 병행된다면, AI는 단순한 보조 수단을 넘어 고위험 업무 영역까지 안정적으로 확장될 수 있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