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게임업계가 '도쿄게임쇼 2025'를 기점으로 일본 시장 공략에 본격 나섰다. 크로스 플랫폼 지원 등 기술적 강점을 앞세운 한국산 서브컬처 게임들이 일본 게이머들의 관심을 끌며, 시장 판도에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지난 9월 25일 개막한 ‘도쿄게임쇼(TGS) 2025’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게임 전시회로, 한국 게임사들의 존재감이 어느 때보다 뚜렷했다. 넥슨, 넷마블, 엔씨소프트 등 주요 대형사는 물론 스마일게이트, 컴투스, 펄어비스까지 주요 게임사 대부분이 참가해 단독 부스와 신작 시연을 선보였다. 일본은 서브컬처(애니메이션·만화 등 일본 대중문화 기반 콘텐츠) 게임의 본고장으로 불린다. 이 시장에서 공개된 다수의 한국 신작 게임들은 플랫폼 경계를 허무는 전략으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특히 넷마블의 ‘일곱 개의 대죄: 오리진’이나 엔씨소프트가 발표한 ‘리밋 제로 브레이커스’처럼, PC와 콘솔, 모바일을 아우르는 ‘크로스 플랫폼’ 방식이 공통적으로 적용됐다. 이는 일본 내 전통적인 게임유통 방식과 상반되는 전략이다. 그동안 일본 게임은 특정 콘솔이나 모바일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했고, PC 버전은 비중이 작았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일본에서도 PC 게이머가 꾸준히 늘면서 시장 구조에 변화가 생겼다. 일본컴퓨터엔터테인먼트협회(CESA)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 게임 시장 내에서 PC 게임 비중은 2020년 6%에서 2024년에는 11%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러한 틈새를 빠르게 파고든 한국 게임사들의 전략이 효과를 내기 시작한 셈이다.
다만 일본 시장에는 중국 게임사들의 ‘물량 공세’도 거셌다. 넷이즈, 텐센트, 퍼펙트월드 등은 그래픽 완성도와 대형 IP 협업을 기반으로 고퀄리티 오픈월드 게임을 잇따라 선보였다. 이에 대해 한국 업체들은 오히려 무리한 정면 승부보다 장르 다양성, 일본 인기 콘텐츠 활용 등 틈새시장을 겨냥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예컨대 스마일게이트는 덱 빌딩 로그라이크 장르의 ‘카오스 제로 나이트메어’와 전략 중심의 ‘미래시: 보이지 않는 미래’를 시연했으며, 컴투스는 일본 애니메이션 ‘도원암귀 ’IP 기반의 신작을 부스로 선보이며 현지 팬층을 겨냥했다. 이처럼 게임의 성격과 플레이 방식에서 차별화를 꾀함으로써, 대형 트리플A 게임과는 다른 영역에서 소비자층을 형성하려는 전략이다.
한편, 도쿄게임쇼의 흥행은 국내 대표 게임 전시회인 ‘지스타’의 위상에도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오는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올해 지스타는 부스 수가 전년 대비 약 10% 줄어든 3,010개로 예상되며, 참여하는 대형사 수도 제한적이다. 주요 게임사들이 TGS와 유럽의 ‘게임스컴’ 등 글로벌 전시회로 무대를 옮기고 있는 상황에서, 지스타의 매력도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선 게임산업 진흥을 위해 정부가 지스타를 세계 3대 게임쇼로 키우겠다고 했지만, 현실적인 차별성 확보와 콘텐츠 경쟁력 강화 전략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 같은 흐름은 한국 게임산업의 글로벌 전략이 국내 중심에서 해외 시장 중심으로 완전히 옮겨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신흥 시장에서의 입지 확보는 향후 실적뿐 아니라 산업 지형 변화를 좌우할 핵심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국내 게임 생태계의 기반인 지스타의 쇠퇴는 한국 콘텐츠 산업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어가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