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는 법을 통과시켰다. 지난 7월 18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미국 스테이블코인 혁신법(GENIUS Act)’은 발행사 등록, 준비금 규제, 공시 의무를 명확히 하면서도 민간의 실험을 제도권 안에서 장려하는 내용을 담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너무 좋아서 내 이름을 땄다”고 농담했지만, 이 법의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미국은 명확한 규제로 혼탁한 시장을 정리하는 동시에 글로벌 결제 혁신의 주도권을 쥐었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등 실물자산으로 담보된 암호화폐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과 달리 가격 변동성이 적어 결제·송금에 적합하다. 특히 국제 송금에서 은행 수수료 15달러, 카드 결제 수수료 2%를 내야 하는 기존 시스템과 달리, 스테이블코인은 10센트도 안 되는 비용으로 몇 분 내 결제가 가능하다. 미국의 규제 정비로 이 시장은 현재 2,600억 달러 규모에서 2028년 2조 달러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그러나 유럽과 한국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영란은행은 스테이블코인이 중앙은행 화폐를 대체하고 금융 안정을 해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국은행도 유사한 우려를 보이지만 최근 태도에 변화가 나타났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은행뿐 아니라 비은행에도 허용하는 논의가 정치권에서 급물살을 타자, 한은은 비은행 발행을 인정하되 ‘유관 기관 만장일치 위원회’ 심사를 거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는 미국 GENIUS 법안의 ‘스테이블코인 인증심사위원회’ 모델과 유사하다. 그간 CBDC 중심 접근을 고수해온 한은이, 불가피하게 민간 진입을 염두에 둔 절충안을 내놓은 셈이다. 다만 통화 신뢰 훼손, 금융시장 리스크 전이, 화폐 주조 차익 이전 등의 우려는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이 이 흐름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점이다.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암호화폐가 아니라, 디지털 달러라는 ‘국제 결제 인프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터키와 나이지리아 등 신흥국에서는 이미 인플레이션 회피 수단으로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반면 한국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실험도,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활용 전략도 뚜렷하지 않다. 과도한 규제가 혁신을 막고 있는 사이, 미국이 디지털 금융 질서를 선도하는 모양새다.
물론 리스크도 있다. 대규모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무너질 경우, 2008년 머니마켓펀드 사태처럼 금융 시스템 전체에 충격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대비해 발행사에게 100% 준비금 보유와 투명한 공시를 의무화했다. 혁신과 안전의 균형을 제도적으로 잡은 것이다. 규제가 모호한 한국과 대조적이다.
이제 한국도 질문해야 한다. “스테이블코인을 막을 것인가, 아니면 관리하며 활용할 것인가?” 한국은행과 금융당국이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디지털 결제의 미래는 미국과 민간 글로벌 기업들의 손에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금융안정이라는 명분만으로 민간 혁신을 외면할 때가 아니다. 명확한 규율 아래 혁신을 허용하는 것이 진짜 금융안정으로 가는 길이다.
✔ 글로벌 디지털 자산 리서치 기관 메사리(Messari)가 스테이블코인 산업의 구조적 변화와 미래 방향성을 집중 조명한 연례 보고서 《2025 스테이블코인 시장 보고서(State of Stablecoins)》를 지난 22일 발간했다. 해당 보고서는 국내 최대의 디지털 자산 전문 미디어인 토큰포스트를 통해 공식 한글 번역본으로 독점 배포 진행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