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가 가장 실용적으로 쓰이는 분야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의료 기록 자동화’다. 미국 헬스테크 스타트업 프리드AI(Freed AI)가 개발한 의료 특화 AI 스크라이브 도구 ‘스크라이브(Scribe)’는 출시 3년 만에 빠르게 의료 현장에 확산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2만 명 이상의 의료진이 유료 이용 중이라고 밝혔다.
프리드AI는 페이스북 출신 엔지니어인 에레즈 드루크(Erez Druk)와 안드레이 바니코프(Andrey Bannikov)가 2022년 샌프란시스코에 공동 창업한 회사다. 의료 전문가들이 진료 중 환자와의 대화를 녹음하면, 스크라이브가 이를 자동으로 전자 의무기록으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의료 전문 용어 인식률이 높고, 문맥 파악을 기반으로 치료 계획까지 요약해 AI가 알아서 ‘의료 문서’를 완성해주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프리드AI는 월 300만 건에 달하는 진료 기록을 처리하고 있다. 한 명의 의료진이 스크라이브로 하루 평균 2~3시간 분량의 문서 작업을 줄이면서, 의료진의 업무 스트레스 해소와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는 반응이다. 드루크 CEO는 “오늘도 의료진이 매일 11시간 이상 문서 작업에 매달린다”며, “이 고통을 덜고자 스크라이브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업계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최근 미국 의료진 포털 업체인 닥시미티(Doximity)가 미국 내 인증 의료인을 대상으로 무료 AI 스크라이브 툴을 공개하면서, 생성형 의료 기록 시장의 본격적인 가격 경쟁이 예고되고 있다. 이는 머지않아 AI 기반 의료기록 시장이 본격적인 범용화 단계에 진입했다는 신호탄으로도 해석된다.
하지만 프리드AI는 특정 대형 병원이 아닌 중소 규모 의료기관과 개인 병원을 주요 타깃층으로 삼아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현재 프리드AI는 미국 전역 1,000곳 이상의 소형 의료기관에서 사용 중이다. 이 전략을 통해 프리드는 최근 누적 연간 반복 매출(ARR) 2,000만 달러(약 288억 원)를 돌파했다고 밝혔다. 앞서 세쿼이아 캐피탈이 주도한 시리즈A 투자에서도 3,000만 달러(약 432억 원)을 유치한 바 있다.
프리드AI의 진화는 단순한 음성 인식 수준을 넘어섰다. 오픈AI의 위스퍼 모델을 기반으로 훈련시킨 자체 AI는 진료 중 나온 말 중 잡담을 걸러내고, 정형화된 의료 용어로 자동 변환해 의료진 개개인의 입력 패턴에 맞는 ‘개인화된 노트’로 기록한다. 20명 이상의 의사들이 매일 기록 정확도를 검토하며, 사용자가 수정한 내용을 AI가 학습하면서 시스템 정확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프라이버시와 보안 측면에서도 철저하다는 평가다. 오디오 기록은 암호화돼 저장되며, 기본 설정 조건에서는 자동 삭제된다. 사용자는 언제든지 본인의 기록을 직접 수정하거나 다운로드할 수 있고, 시스템은 미국 건강보험 양도 및 책임에 관한 법률(HIPAA), HITECH, SOC2 등 주요 보안 규정을 준수한다.
프리드AI는 최근 구글크롬 확장 프로그램’을 출시하며 전자 건강기록(EHR) 시스템과의 연동 기능 강화에도 나섰다. 향후엔 자동 입력 기능까지 추가해 EHR 연동을 완전 자동화할 계획이다. 또한 업계 표준을 만들기 위한 30개 항목 기준 벤치마크 시스템도 구축 중이다.
드루크는 “AI 스크라이브는 이제 100개가 넘게 나왔지만, 대부분 겉보기만 그럴 듯하다”며, “우리는 진짜 기준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한 의사는 프리드를 사용한 뒤 폐업하려던 병원을 되살렸고, 또 다른 의사는 “왜 이걸 30년 전에 안 만들었느냐”며 감탄했다고 한다.
의료AI 시장의 다음 격전지는 단순 복사 수준을 넘어선 업무 흐름 맞춤형 AI 경쟁이 될 전망이다. 프리드AI는 그 전면에 서서, 의사가 다시 진료에 집중하게 만드는 기술이라는 차별점을 내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