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앞에 무너지는 언론의 성벽…이젠 '차단' 대신 '인용'이 답

AI 기술이 뉴스 산업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전통 미디어 업계는 인공지능의 콘텐츠 스크래핑에 맞서 보안 강화와 법적 대응에 나섰지만, 이미 기울어진 판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오히려 산업의 판도를 바꾸는 AI의 흐름에 편승하려는 전략적 전환이 대세로 부상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최근 주요 언론사들은 자사 콘텐츠를 AI 크롤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클라우드플레어와 같은 보안 기업과 협력해 디지털 방어벽을 구축하고 있으며, 무단 콘텐츠 수집을 이유로 몇몇 기술 기업에 소송도 제기한 상태다. AI가 자사 기사를 학습 데이터로 활용하면서도 아무런 대가나 언급 없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반발이다.

클라우드플레어는 AI 스크래핑 시도가 전년 대비 18% 증가했다고 밝혔다. 일부 언론사는 오픈AI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는 등 타협안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수단조차도 사후 약방문에 가깝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문가는 "AI가 침입자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지형을 만들고 있는 이상, 외부를 봉쇄하는 것보다 내부로 초대받는 편이 현명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AI는 사용자의 콘텐츠 소비 방식 자체를 바꿔놓고 있다. 더 이상 이용자들은 수십 개의 언론 사이트를 옮겨 다니며 정보를 수집하지 않는다. 대신 간결하고 정확한 요약, 그리고 맥락까지 제공해줄 수 있는 AI 챗봇이나 검색 엔진의 AI 요약 기능을 선호하는 추세다. 방대한 종류의 콘텐츠를 요약하고 재구성하는 능력을 갖춘 대형언어모델(LLM)은 굳이 원문을 무단 복사할 필요도 없이, 뉴스 소비의 필요성 자체를 재정립하고 있다.

이처럼 AI가 텍스트 기반 콘텐츠를 학습하고 요약·재생산하는 과정은 기존 뉴스 생태계의 구조적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뉴스 기사 역시 타 기사들을 참고하고, 블로거나 분석가들은 같은 정보를 반복적으로 재가공해왔다. AI는 단지 그 과정을 대규모로 자동화한 것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AI가 요약한 정보에서 언론사를 정확히 인용하고 본문의 핵심을 제대로 전달한다면, 이는 브랜드 인지도와 영향력을 확장시키는 기회가 된다"고 강조한다.

이 때문에 일부 언론사들은 AI에 적대적인 입장을 고수하기보다 협력 전략으로 전환하고 있다. 오픈AI와 협업 중인 닷대쉬 메레디스처럼, AI 모델이 작성자 정보나 출처를 정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이른바 ‘AI 친화적’ 콘텐츠 구조를 채택하는 곳이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AI가 뉴욕타임스나 블룸버그 같은 신뢰도 높은 출처를 우선적으로 참조하게 된다면, 이는 오히려 대중 신뢰를 높이고 독자 유입을 강화하는 효과가 클 것"이라고 분석한다.

궁극적으로는 미래 독자층이 언론을 처음 접하는 경로 자체가 AI로 대체되고 있다는 점이 본질적인 변화다. 아이오와의 고등학생이 AI에 대법원 판결의 의미를 묻거나, 애리조나의 유권자가 후보자의 정책 이력을 검색할 때, AI가 제공하는 수초짜리 답변이 그들의 세계관을 구성한다. 이때 해당 언론이 AI의 학습 범위를 피한다면, 뉴스의 대화에서 잊혀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콘텐츠의 미래는 더 이상 ‘담장’ 뒤에 있지 않다. 그것은 데이터 세트 속에 있고, 하이퍼링크형 인용에 있으며, 주요 LLM이 참고하려 고심하는 고품질 저널리즘에 있다. 언론이 AI에 대한 방어에만 몰두한다면, 결국 자신을 AI 시대의 뉴스 지형에서 지워버리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AI가 언론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언론을 전달하기 위한 새로운 경로가 되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제 언론이 택해야 할 길은 차단이 아니라, 인용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