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업계가 지난 10년간 ‘탈중앙화’라는 가치 전파에 몰두하는 동안, 인공지능(AI) 산업은 조용히 역대급 독점 구조를 구축했다. 특히 구글, 오픈AI, 안트로픽 등은 막대한 규모의 데이터를 사유화하며 독점적 우위를 확보하고 있는 반면, 크립토 업계는 여전히 디파이(DeFi) 복제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오픈레저(OpenLedger) 핵심 기여자인 램 쿠마르(Ram Kumar)는 최근 기고문을 통해 “AI 기업들은 수십억, 수조 개의 토큰 형태 데이터로 모델을 학습시키며 2025년까지 3,000억 달러(약 414조 원)의 수익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미 막대한 규모의 데이터 독점을 형성했고, 이는 프로토콜 지배보다 훨씬 심각한 차원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수년간 비트코인(BTC) 진영은 블록 사이즈 논쟁을 벌였고, 이더리움(ETH) 커뮤니티는 MEV(최대 추출 가치) 논쟁에 몰입했다. 하지만 동시에 AI 기업들은 인터넷 상의 지식 자산을 크롤링해 폐쇄적인 학습 모델에 가뒀고, 인간의 지식 자체를 중앙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쿠마르는 “탈중앙화 금융 인프라를 만든 크립토 업계가 정작 ‘중앙화된 지능’에는 대안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며 “이는 존재적 위협을 무시한 중대한 착오”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AI용 학습 데이터가 본질적으로 휴대할 수 없는 형태라는 점에 주목했다. 수천억 개의 데이터 토큰을 수집해 만든 파운데이션 모델은 학습에 수개월, 비용은 최소 1억 달러(약 1,380억 원)가 들며, 한 번 완성되면 복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게다가 오픈AI는 주요 출판사와 독점 계약을 맺었고, 구글은 검색 데이터 20년치, 메타는 소셜 네트워크 15년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런 정보 자산의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벌어진다.
그러나 크립토 업계 창업자들은 여전히 인센티브 중심의 토큰 모델, 수익형 디파이 확장에 집중하고 있다. 쿠마르는 “지금 가장 시급한 인프라는 NFT 마켓플레이스가 아니라 데이터세트 기여자 등록과 소유권을 증명할 레이어”라며, “이 인프라가 완성돼야만 AI 기업 독점 구조에 맞설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이더리움도 초기에 느린 컴퓨터라며 주목받지 못했고, 체인링크(LINK)도 오라클 네트워크를 수년간 구축하며 지루한 인프라 역할을 했다”며, “진정한 가치는 그러한 ‘지루한 숙제’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데이터를 학습에 제공하기 전에 암호 방식으로 라이선스를 서명하게 하고, 사용된 데이터에 대해 기록을 남기며, 이를 기반으로 AI 모델 인퍼런스로 발생한 수익을 원천 기여자들에게 자동 분배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술적으로도 이는 고도의 합의 알고리즘이나 실험적 암호 기술 없이도 충분히 가능한 구조다.
쿠마르는 “비트코인은 중앙은행이 화폐를 독점하지 못하도록 만들었고, 이더리움은 소수 기업들이 연산을 지배하는 것을 막으려 했다”고 설명하며, “그렇다면 AI 기업이 인간 지능과 정보 질서를 독점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지금까지의 크립토 운동은 무의미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향후 2년 안에 적절한 인프라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현재 AI 기업이 쌓고 있는 데이터세트 모놀리(독점 구조)는 자연 법칙처럼 고착화될 것”이라며 “이대로 간다면 블록체인은 탈중앙화를 이야기만 하다 끝난 운동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