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단순히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대체재’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국내 결제 인프라를 확장하는 ‘정산 생태계’ 구축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글로벌 결제 시장이 빠르게 재편되는 상황에서 원화 기반 디지털 결제망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한국기업평가 안태영 책임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국내로 유입될 경우 원화로 환전하는 과정에서 비용과 시간 지연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소액·다건 거래가 많은 디지털 환경에서는 이런 비효율이 더욱 두드러진다는 설명이다. 반면 원화 스테이블코인 정산 체계가 구축되면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원화 스테이블코인으로 ‘즉시 교환’해 실시간 결제가 가능해져, 결제 효율성과 속도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달러 중심 구조 속 ‘정산 인프라’로서의 역할 부각
다만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글로벌 시장에서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대체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현재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글로벌 시장의 95% 이상을 차지하며, 디파이(DeFi)와 가상자산 거래 전반에서 압도적인 유동성과 네트워크 효과를 구축한 상태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결제 수단’ 자체로 경쟁하기보다, 국내 정산 과정에서의 효율성을 높이는 보완적 역할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국내 결제 인프라가 이미 잘 갖춰져 있다는 점도 변수다. 카드와 계좌이체 중심의 결제 시스템이 고도화된 상황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단기적으로 기존 수단을 대체할 만큼의 추가 효용을 제공하기는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그럼에도 정책적 필요성은 분명하다. 현재 국내 수출 결제에서 달러 비중이 84.5%에 달하는 반면, 원화 비중은 2.7%에 그치고 있어 글로벌 무역 환경에서 원화 활용도를 높일 필요성이 제기된다. 최근에는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무역금융 수단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금융권 “기회와 리스크 공존”
금융기관별로는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제기된다. 은행의 경우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운영에 참여할 경우 새로운 수익원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신뢰가 훼손될 경우 대규모 인출 사태, 이른바 ‘코인런’ 위험이 발생할 수 있고, 예금 이탈에 따른 조달 비용 상승과 수익성 저하 가능성도 부담 요인으로 지목된다.
카드사 역시 영향권에 있다. 신용카드의 ‘후불 기능’은 여전히 대체가 어려운 영역이지만, 스테이블코인 확산으로 결제 수수료 기반 수익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스테이블코인을 기존 결제망에 통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결국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스테이블코인과의 경쟁 구도보다는, 글로벌 자금 흐름 속에서 국내 결제·정산 구조를 효율화하는 보완적 인프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시장의 판도를 단기간에 바꾸기보다는, 점진적인 역할 확대가 현실적인 시나리오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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