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세계 증시를 끌어올리고 있는 반도체주 강세가 실제 기업 이익 증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2000년 전후의 닷컴버블과는 결이 다르지만, 주가가 지나치게 빠르게 오르고 있어 과열 위험은 함께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9일(현지시간) 보도한 내용을 보면, 이번 반도체 랠리의 핵심 배경은 인공지능 수요 급증이다. 과거에는 그래픽처리장치(GPU)가 인공지능 연산의 상징처럼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중앙처리장치(CPU)와 메모리 반도체까지 수요가 넓게 번지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 서비스가 텍스트와 이미지 생산을 넘어 스스로 여러 작업을 이어서 처리하는 에이전트형 기능으로 진화하면서, 데이터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데 필요한 반도체 전반의 중요성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대형 기술기업들이 확보 가능한 반도체와 컴퓨팅 자원을 공격적으로 사들이면서 관련 기업 실적도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주가 흐름은 이런 기대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최근 6주 동안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에 편입된 반도체 기업들의 시가총액은 약 3조8천억달러, 우리 돈으로 5천560조원 늘었다. 최근 1년 상승률만 봐도 샌디스크는 4039.7%, 마이크론은 769.8%, 인텔은 483.2% 뛰었다. 특히 8일에는 인텔이 애플과 예비 칩 제조 계약을 맺었다는 보도가 나온 뒤 주가가 14% 올랐고, 마이크론도 15.5% 상승했다. 시장에서는 단순한 기대감이 아니라 인공지능 인프라 확장 경쟁이 실제 수주와 이익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그렇다고 해서 지금 상황을 무조건 안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짚었다. 닷컴버블 시기에는 투자 열기가 앞서 나가면서 이익을 거의 내지 못하는 기업들까지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이번에는 적어도 일부 핵심 반도체 기업들이 뚜렷한 실적 개선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예컨대 애널리스트들은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2026 회계연도(2025년 9월 4일∼2026년 9월 3일)에 매출 1천70억달러, 영업이익 770억달러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회사가 2023 회계연도(2022년 9월 2일∼2023년 8월 31일)에 매출 155억달러를 기록하고 영업손실을 냈던 점을 감안하면, 실적 전망의 변화 폭이 매우 크다. 다만 실적이 좋아진다고 해도 주가가 그 이상으로 선반영되면 시장은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 경계론의 핵심이다.
실제로 시장 내부에서도 낙관과 불안이 함께 나타난다. 바클레이스 애널리스트들은 6일 고객 서한에서 이런 이례적인 급등세가 시장 예상보다 더 오래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반면 반도체주에 투자 중인 일부 투자자들은 지금 수익률이 “초현실적”일 정도라고 평가하면서도, 시장이 비싸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다. 이는 상승 동력이 분명해도 가격이 너무 빨리 오르면 작은 변수에도 조정이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같은 흐름은 당분간 인공지능 투자 확대와 함께 이어질 가능성이 있지만, 앞으로는 실적 증가 속도가 현재의 높은 기대를 계속 따라갈 수 있는지가 반도체 랠리의 지속 여부를 가를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