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픽

맨위로 가기
  • 공유 공유
  • 댓글 댓글
  • 추천 추천
  • 스크랩 스크랩
  • 인쇄 인쇄
  • 글자크기 글자크기
링크가 복사되었습니다.

AI 시대의 질문, 인간은 여전히 의미 있는 존재인가

작성자 이미지
김민준 기자
0
1

생성형 AI 확산으로 지식노동자들이 일자리뿐 아니라 정체성 위기를 겪고 있으며, 인간 고유의 가치를 되묻는 시점에 직면했다고 전했다.

AI 시대의 질문, 인간은 여전히 의미 있는 존재인가 / TokenPost Ai

생성형 AI가 인간의 언어와 사고를 점차 대체해 가는 가운데, 지식 노동자들은 단순한 일자리 상실을 넘어 자기 정체성마저 흔들리는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한때 안정적이고 존중받던 ‘지식 기반 직업’이 알고리즘에 의해 대체되며 인간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묻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최근 포춘이 보도한 사례는 이 같은 흐름을 여실히 보여준다. 컴퓨터공학 학위를 가진 42세 전직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제너레이티브 AI 확산 이후 일자리를 잃고 800곳 넘는 기업에 이력서를 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결국 도어대시 배달 일을 하며 캠핑카에서 임시로 생활하고 있다. 이 사례는 단순한 실직이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직면한 정체성의 붕괴를 상징한다. 새로운 기술은 일자리를 바꾸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의 존엄과 존재 이유를 재설정한다.

그동안 지식 노동은 인간의 두뇌 능력, 즉 분석력, 창의성, 해결 능력 등을 중심으로 사회적 가치와 자존감을 제공해왔다. 산업 시대에는 기계와 노동력이 중심이었다면, 디지털 시대는 지식과 사고로 뒷받침되는 노동이 핵심이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코딩, 데이터 분석, 전략 수립 등 고차원적 기술마저 수행하면서 이러한 전제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

실제로 하버드비즈니스리뷰가 최근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AI를 활용해 생산성이 높아진 근로자들이 오히려 업무에 대해 덜 몰입하고 동기부여 또한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인공지능이 창의적 사고와 문제 해결을 대신하면서 인간의 성취감과 발전 가능성 또한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는 인간의 노동이 갖는 의미까지 뒤흔든다. 사진 촬영을 주로 해온 한 직업사진가는 “기획, 기사 작성, 이미지 생성 등 거의 전 과정이 AI로 대체되고 있다”며 “야외촬영을 통한 직접 경험을 원하는 일부 수요가 아니면 더는 먹고살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기술의 진보가 가져온 것은 ‘노동의 재배치’가 아니라 ‘의미의 탈주’다.

음악가 빌리 아일리시가 불렀던 ‘나는 왜 만들어졌나(What Was I Made For?)’라는 질문은 지금 시대를 관통한다. 사람들이 가진 기술이나 사고가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닐 때, 인간은 스스로 어떤 존재인지 되묻게 된다. 그런데 바로 이 질문이야말로, AI 시대에 인간이 다시 정의해야 할 정체성과 존재 가치의 출발점일지 모른다.

역사를 되짚어보면, 인간은 언제나 노동을 통해 자아를 형성해왔다. 농경 시대의 농부와 목축업자, 산업 혁명의 현장 노동자, 그리고 지식 기반 디지털 경제의 엔지니어와 마케터까지. 시대가 바뀔 때마다 인간은 도구와 방식은 물론, 자신이 세상에서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관점을 바꿔왔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또 한 번의 ‘실존적 이주’를 맞이하고 있다.

이번 이주는 기계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역량을 재발견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공감, 윤리, 예술적 감성, 공동체와의 연대감 등이 여기에 속한다. 기술이 지배하는 세계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을 원한다. 소설 ‘저항자들’처럼, 따뜻한 말 한마디, 누군가를 위한 정성스러운 식사, 함께 듣는 책 한 구절 같은 작고 진실된 행위들이 바로 그것이다.

교황 레오 14세는 최근 AI의 등장을 산업혁명급 문명사적 사건으로 규정하며 “단순히 규제 차원이 아니라 도덕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동의 가치는 단지 어떤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일을 통해 어떤 존재로 성장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겉보기에 조용한 과도기에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를 ‘거대한 변화 직전의 정적’이라고 표현했다. 대부분은 아직 AI의 빠른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지만, 실상은 이미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구글 딥마인드는 인간 수준을 뛰어넘는 알고리즘을 자율 설계하는 AI를 개발하는 단계에 들어섰고, 향후 몇 년 안에 범용 인공지능(AGI)이 등장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이 변화는 단번에 닥치지 않는다. 어쩌면 조용한 테러처럼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우리 사회의 형태를 바꿔갈 것이다. 그래서 준비가 중요하다. 지금 이 순간부터 인간은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재정의해야 한다. “나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은 새로운 절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다.

지금 우리는 기계보다 더 똑똑해지는 법을 익혀야 할 시점이 아니다. 우리가 왜 존재하는지를 되묻고,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지를 다시 발견해야 할 때이다. 이것이야말로 AI 시대 인간의 가장 큰 숙제이자, 가장 깊은 가능성이기도 하다. 진정한 귀착지는 더 강한 두뇌가 아니라 더 깊은 마음에 있을지도 모른다.

<저작권자 ⓒ TokenPo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기사제보 보도자료

많이 본 기사

관련된 다른 기사

댓글

0

추천

1

스크랩

Scrap

데일리 스탬프

0

매일 스탬프를 찍을 수 있어요!

데일리 스탬프를 찍은 회원이 없습니다.
첫 스탬프를 찍어 보세요!

댓글 0

댓글 문구 추천

좋은기사 감사해요 후속기사 원해요 탁월한 분석이에요

0/1000

댓글 문구 추천

좋은기사 감사해요 후속기사 원해요 탁월한 분석이에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