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이후 신규 투자를 유치하지 못한 미국 스타트업이 무더기로 포착됐다. 이들은 과거 막대한 자금을 조달해 유니콘 반열에 올랐지만, 최근 몇 년간 변화된 벤처 자금 흐름과 시장 환경 속에서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크런치베이스(Crunchbase)의 집계에 따르면 최소 1억 달러(약 1,440억 원) 이상을 확보했음에도 지난 2021년을 마지막으로 투자를 받지 못한 기업은 280곳에 달한다. 당시 이들이 끌어모은 투자 규모는 총 774억 달러(약 111조 4,600억 원)로, 지난해 전 세계 스타트업에 투입된 분기 평균 자금을 상회하는 수준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커넥티드 피트니스, 전자상거래, 개인 소비자 대상 앱 등 한때 주목받았던 분야에 포진해 있다. 그러나 이들 섹터 전반이 팬데믹 특수 후유증과 투자 심리 둔화로 인해 냉각기를 맞이하면서 시장의 외면을 받고 있다. 단적으로는 미스터미트, 미로(Mirror), 옐로우(Yellow), 원 메디컬 등 한때 높은 기대를 받았던 유니콘들이 더 이상 추가 자금조달 소식을 전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모든 기업이 위기에 처한 것은 아니다. 예컨대 오토매틱(Automattic)은 2021년 마지막 투자 라운드에서 75억 달러(약 10조 8,000억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고, 이후 블랙록이 이 기업의 지분가치를 10% 하향 조정하긴 했지만 치명적인 손실로 보기는 어렵다. 또 문법 교정 서비스로 알려진 그래멀리(Grammarly)는 최근 제너럴 캐털리스트로부터 10억 달러(약 1조 4,400억 원)를 재유치하며 시장 복귀를 알렸다.
반면, 일부 스타트업은 변한 시장 흐름에 맞춰 비즈니스 모델을 전환하며 생존을 도모 중이다. 공유 전동 스쿠터 및 자전거 서비스업체 라임(Lime)은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과 흑자 전환을 달성했지만, 마이크로모빌리티 산업 전반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은 여전히 미지근하다. 다이어트 앱 스타트업 눔(Noom) 역시 초기에는 유저 기반 다이어트 솔루션으로 주목받았으나, 현재는 GLP-1 계열 체중감량 치료제와 폐경기 여성 대상 호르몬 대체요법(HRT)으로 중심을 옮기고 있다.
우버 공동창업자 트래비스 캘러닉(Travis Kalanick)이 설립한 클라우드키친(CloudKitchens)도 고스트키친 열기가 빠지며 고전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운영 효율화 방안을 모색하며 반전을 노리고 있다. 이처럼 자금 조달은 멈췄지만, 시장에서 퇴출되지 않은 스타트업들은 저마다 방식으로 살아남고 있다.
스타트업의 수명 주기는 예측하기 어렵다. 처음부터 실패로 끝나는 경우도 있는 반면, 몇 년간 조용히 버티다 회생하거나 인수합병을 통해 재평가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유니콘이라 해서 모두가 성공을 담보하는 것도 아니며, 반대로 밸류에이션 대비 실질 가치는 다소 낮지만 실용성은 여전히 높은 기술로 오랜 기간 살아남는 기업도 존재한다.
결국, 2021년 마지막으로 대규모 투자를 받은 기업들 가운데 누가 다음 붐의 주역으로 재등장할지는 지금으로선 가늠하기 어렵다. 지금은 메마른 자금 환경 속에서 버티는 중이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들 중 일부는 또 다른 도약을 준비하고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