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발효한 스테이블코인 규제법 '지니어스 법안(Genius Act)'이 글로벌 시장을 강타한 가운데, 예상과 달리 최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테더(Tether)는 법적 충돌 대신 정면 돌파를 택했다. 퇴출 위기설이 돌던 테더는 CEO가 백악관 서명식에 직접 초청돼 참석했고, 곧바로 “법안에 맞춰 미국에 진출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Genius Act는 퇴출의 신호가 아닌, 제도권 협상의 출발점이 된 셈이다.
■ 규제 1순위였던 테더, 백악관 무대에 서다
지난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니어스 법안에 서명하며 미국 연방 차원의 스테이블코인 규제 체계가 공식 발효됐다. 해당 법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를 연방 예금기관 또는 중앙은행 감독 하에 등록하도록 요구하며, 외부 감사, 1:1 준비금 보유, 자금세탁방지(AML) 및 고객확인(KYC) 요건을 의무화했다.
시장에서는 진작부터 테더가 가장 먼저 퇴출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본사가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있고, 오랜 기간 외부 감사를 받지 않았으며, 미국 내 발행이나 등록도 하지 않은 테더는 법안 요건을 거의 충족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비공식 스테이블코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지니어스 법안 서명식이 열린 백악관 현장에 테더 CEO 파올로 아르도이노(Paolo Ardoino)가 참석한 사실이 알려지며 분위기는 반전됐다. 아르도이노는 자신의 X(트위터)를 통해 “오늘 백악관에서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했다”고 밝혔다. 퇴출 대상이라던 테더가 미국 대통령의 서명식 무대에 공식 초청받은 것이다.
■ “미국 시장은 중요하다…규제에 맞추겠다”
백악관 방문 직후 진행된 CoinDesk와의 인터뷰에서 아르도이노는 “미국에 진출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Genius Act가 요구하는 요건을 따를 것”이라고 선언했다.
“우리는 Genius Act가 요구하는 규정을 준수하겠다. 어떤 연방 라이선스를 신청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미국 법인을 새로 설립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미국은 테더의 전략에서 매우 중요한 시장이다.”
이는 퇴출 회피가 아닌 제도권 진입을 위한 전략적 수용 선언에 가깝다. 아르도이노는 “규제를 무조건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에 맞게 테더의 구조를 재설계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 “우리는 이미 준비됐다”는 서클…미국 시장 선점 나서
한편, Genius Act 시행으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것은 USDC 발행사 서클(Circle)이다. 제레미 알레어 서클 CEO는 같은 날 “우리는 Genius 요건을 이미 충족하고 있으며, 법안 발효 당일 연방 면허를 신청했다”고 발표했다.
USDC는 이미 미국 내 주요 은행과의 파트너십, 정기 감사 보고서, 안정적인 유동성 구조를 바탕으로 미국 기관 투자자 사이에서 신뢰를 얻어왔다. 알레어는 “이제 미국 내 합법적인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USDC 하나뿐”이라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 단순한 승패 구도가 아니다…미국도 테더를 포기할 수 없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USDC vs. USDT 구도를 단순한 규제 충족 여부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테더는 미국 외 지역, 특히 남미·중동·동남아시아 등 달러 결제 수요가 높은 지역에서 '디지털 달러'로 사용되고 있는 실질 통화이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테더를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초청한 것도 이러한 글로벌 실효성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악관 초청과 규제 준수 발언은, Genius Act가 단순한 ‘퇴출 프레임’이 아니라 글로벌 유통망과 정치적 합의를 동시에 고려한 제도 설계였다는 점을 보여준다.
■ 규제가 문을 닫은 게 아니라 열었다
지니어스 법안은 전례 없는 규제이지만, 동시에 질서 위에서 경쟁하라는 ‘초대장’이기도 하다. 테더는 이에 응답했고, 미국 정부는 협상의 문을 닫지 않았다. 퇴출된 건 아무도 없다. 이제는 누가 규칙 위에서 더 멀리 가느냐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아르도이노가 말했듯, “이제 중요한 것은 각 기업이 법안에 어떻게 대응하는가”다. 미국은 기준을 만들었고, 시장은 그 위에서 다시 판을 짜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