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이 13일부터 18일까지 미국 워싱턴에 모여, 이란 전쟁이 촉발한 물가 상승과 경기 둔화 우려에 대응할 공조 방안을 논의한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이 여는 이번 춘계 회의는 전쟁으로 흔들린 에너지 시장과 공급망 불안이 세계 경제 전반으로 번지는 상황에서, 특히 충격에 취약한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을 어떻게 지원할지를 핵심 의제로 다루게 된다.
이번 회의를 앞두고 IMF와 세계은행은 이미 세계 경제에 대한 경고 수위를 높였다. 두 기관은 이란 전쟁의 여파로 세계 성장률 전망은 낮추고, 인플레이션 전망은 끌어올릴 가능성을 시사했다. 가장 큰 이유는 원유와 가스 같은 에너지 가격 상승, 그리고 전쟁으로 인한 운송·조달 차질이다.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일수록 생산비와 수입물가가 함께 뛰기 쉬운데, 이 부담이 소비자 물가 상승과 내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세계은행은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의 성장률 기준선 전망치를 지난해 10월 4%에서 올해 3.65%로 낮췄다. 전쟁이 길어질 경우에는 2.6%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봤다. 같은 나라들의 물가 상승률 전망치도 3%에서 4.9%로 올렸고, 최악의 경우 6.7%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IMF는 비료 수송 차질이 계속되면 전 세계에서 4천500만명 이상이 추가로 심각한 식량 불안을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비료 공급이 막히면 농산물 생산이 줄고, 이는 다시 식품 가격 급등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저소득 국가들에 타격이 더 클 수 있다.
회의에서는 실제 지원 여력과 방식도 구체적으로 논의될 전망이다. IMF는 저소득국과 에너지 수입국을 위한 단기 긴급 지원 수요가 200억달러에서 500억달러, 우리 돈으로 약 29조원에서 74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세계은행도 단기적으로 250억달러, 약 40조원 규모의 자금을 동원할 수 있고, 필요하면 6개월 안에 700억달러, 약 103조5천억원까지 확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메리 스벤스트룹 세계개발센터(CGD) 연구원은 많은 개도국과 신흥국이 과거보다 재정 여력이 줄고 부채 취약성은 커진 상태에서 이번 충격을 맞고 있다고 지적했다. 단순히 재정 건전성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성장과 생계 안정을 함께 고려한 지원 체계를 다시 짜야 한다는 주문이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12일 미국 CBS 방송 인터뷰에서 미국과 이란의 휴전이 이어지더라도 이미 오른 물가가 전쟁 이전 수준으로 빠르게 되돌아가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전쟁 충격이 국가별·지역별로 다르게 나타나는 비대칭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설명이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회의의 무거운 분위기가 전쟁 전까지 IMF와 세계은행이 보였던 비교적 낙관적인 시각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에도 세계 경제가 버틸 수 있다고 봤던 흐름이, 지난 2월 말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공급망 불안과 물가 압력 확대로 급변한 셈이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 전쟁 장기화 여부와 에너지 가격 안정 수준에 따라 더 선명해질 가능성이 있으며, 취약국 지원이 늦어질수록 부채, 저성장, 투자 부진이 동시에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