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술이 기업 소프트웨어 시장의 핵심 경쟁 축으로 떠오르며, 기존의 SaaS 판매 전략이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 과거에는 기능이 우수한 제품에 수년 계약을 더한 형태가 이상적인 매출 구조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그 공식이 통하지 않는다. 소프트웨어 바이어들은 더 이상 고정된 기능에 오래 묶이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AI 기술의 빠른 진화 속도가 제품 차별화의 유효기간을 단축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기업 고객은 장기 계약 대신 빠른 실험과 잦은 평가를 선호한다. 3년 선불 계약 같은 과거의 거래 방식은 기술 변화 속도라는 현실과 맞지 않는다. 특히 AI 기반 스타트업이 연이어 시장에 등장하면서, 고객은 언제든 더 나은 대안을 만날 수 있다는 전제를 갖고 움직이고 있다. 이 때문에 다수의 IT 구매자들은 이제 제품 완성도보다 얼마나 빨리 변화를 따라갈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SaaS 기업은 제품 기능뿐 아니라 ‘개발 속도’ 자체를 강점으로 내세워야 하는 시대가 됐다. 단순히 “현재 최고의 기능을 갖춘 솔루션”이라는 설명은 설득력을 잃었다. 대신, “우리는 당신이 아직 고민하지도 않은 문제까지도 가장 먼저 해결해 나가는 팀”이라는 메시지가 더 주효하다. 기능 기반의 ‘제품 차별성’보다 지속적 개선을 보여주는 ‘속도 기반 경쟁력’이 새로운 방어벽으로 떠오른 것이다.
실제 판매 현장에서도 전략 변화가 감지된다. 일부 뛰어난 SaaS 기업은 엔지니어와 제품 팀을 세일즈 말미에 직접 참여시켜 고객에게 개발 속도를 입증하고, 높은 신뢰를 얻고 있다. 고객은 이제 기술 스택이 아니라 함께 진화해갈 수 있는 파트너를 원한다. 고정된 솔루션보다는 AI 기술 발전을 빠르게 흡수하며 변화하는 플랫폼에 끌리는 것이다.
이러한 시장 움직임에 맞춰 성과를 내는 팀들은 몇 가지 공통된 전략을 취하고 있다. 첫째, 계약 기간은 짧게 가져가고, 실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빠르게 제품 가치를 증명한다. 둘째, 과도한 비밀주의 대신 로드맵을 적극적으로 공유하며 믿음을 구축한다. 셋째, 완성도보다는 반복적인 릴리즈로 ‘빠른 혁신력’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AI 기술을 무조건 강조하기보다는 실제 워크플로 향상에 기여하는 지점을 명확히 드러낸다. ‘AI 탑재’가 아닌 ‘AI에 의한 실질 개선’이 관건이다.
이와 같은 흐름은 SaaS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제품 자체뿐 아니라 변화 리더십, 제품 출시 주기, 진화에 대한 약속, 고객 신뢰까지 모두 종합적으로 경쟁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제 고객은 매 분기마다 마음속에서 새로운 RFP(제안요청서)를 떠올린다. 그만큼 긴박한 상황이지만, 속도와 민첩함, 투명성을 갖춘 기업이라면 이전보다 더 강력한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