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무역의 판도가 급변하는 가운데, 미국은 다시 한번 ‘관세 전쟁’이라는 무기를 손에 쥐고 있다. 특히 미·중 간의 무역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 정책 기조는 정책적 연속성과 함께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 투자 업계는 이 같은 흐름을 일회성 조치가 아닌 ‘새로운 상수’로 받아들이며 전략 재정비에 나서는 분위기다.
관세는 단순히 수입품에 붙는 세금이 아니다. 이는 미국 정부가 지정학적 경쟁과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해 활용하는 핵심 도구이기도 하다. 예컨대 중국의 강제노역 사용 혐의 등 비윤리적 생산 관행에 대응하거나, 자국 내 공급망과 고용을 안정시키기 위한 조치로 관세가 부과되고 있다. 나아가 연방 정부의 막대한 재정 적자를 고려할 때, 관세는 잠재적 세수 확대 수단으로도 기능하는 측면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 행정부의 대중국 관세는 2018년 약 2,500억 달러(약 360조 원)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해 부과된 이후, 조 바이든 대통령 체제에서도 유지되거나 오히려 강화되면서 그 지속성을 입증해 왔다. 최근에는 전기차, 태양광 패널, 반도체와 같은 전략 기술 분야로 관세 대상이 확대되는 추세다. 이는 단기적 소비자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미국 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전략적 목표에 부합한다.
미국 벤처캐피탈 에라 벤처스(Era Ventures)의 라자 가위 파트너는 "현재의 글로벌 관세 트렌드는 일시적 흐름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라고 진단하며, “기업들은 이제 중국 단일공급망 전략을 포기하고 복수 국가로 공급선을 다변화하는 것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멕시코는 인건비 경쟁력과 지정학적 안정성 측면에서 중국의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북미·남미 지역에 대한 공급망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단, 모든 제조업을 다시 미국 내로 들여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고도로 자동화된 고부가가치 산업, 특히 반도체 등은 국내화할 수 있지만, 신발·섬유처럼 저비용 대량 생산이 필요한 업종은 여전히 아시아와 중남미 의존이 불가피하다. 이런 현실 속에 기업들이 해야 할 일은 공급 다변화 전략을 철저히 세우는 동시에, 새롭게 생성되는 글로벌 조달 거점에서 기회를 발굴하는 것이다.
특히 조달 구조가 복잡하고 지역 편차가 심한 건설, 제조 산업은 그 자체가 ‘시장의 기회’가 되고 있다. 연간 2조 2,000억 달러(약 3,168조 원)에 이르는 미국 건설 산업 중 자재비 비중은 절대적이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여전히 조직적인 조달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환경은 글로벌 B2B 마켓플레이스와 조달 솔루션 스타트업이 부상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라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글로벌 공급망은 보다 분산되고 융합적인 형태로 재편될 것이다. 미국 기업은 더 이상 ‘최저가’만을 기준으로 공급처를 택할 수 없으며, 지정학·윤리성·지속가능성 등 다차원의 전략 판단이 요구된다. 변화의 물결 속에서 민첩하게 대응하는 기업만이 생존하고, 성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