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거대한 연극 무대가 됐다. 겉보기엔 황금 장식과 대리석 기둥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판지와 석고로 만든 세트장. 마법 같은 장치들을 작동시키는 밧줄과 도르래는 커튼 뒤에 교묘히 숨겨져 있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 하나에 글로벌 시장이 요동치고, 연준 의장 한마디에 수조 달러가 움직이며, 빅테크 CEO들은 워싱턴 청문회장에서 고개를 조아린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시대의 자화상이다.
이 모든 연극의 진짜 목적은 은폐다. 한때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고 표방하던 기득권 질서가 이제는 노골적인 자기 치부의 장으로 변질됐고, 그 현실을 대중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막대한 자원이 퍼포먼스에 쏟아진다. 미국 상위 1%의 자산은 팬데믹 이후 더욱 빠르게 불어났고, 중산층의 실질임금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그 간극이 벌어질수록 무대 위의 배우들은 더 큰 목소리로 외친다. 기술과 진보 덕분에 지금이 가능한 세상 중 최선이라고. 거짓이 클수록 공연 예산은 늘어난다.
대중이 퍼포먼스에 익숙해질수록 연극의 수위는 높아진다. 관세 전쟁, 탄핵 공방, 가상자산 규제 혼란이 매일 무대에 오른다. 모든 선언은 스스로를 희화화하는 수준으로 과장되고, 분노할 일들이 너무 빈번하게 쏟아지다 보니 대중은 이제 어떤 것에도 분노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원래 그런 것'으로 수용된다. 그렇게 길들여진 대중은 이윽고 권태를 느끼고, 야유를 보내기 시작한다.
그러자 이번엔 무대에서 투기판을 깔기 시작한다. 밈코인이 하룻밤 새 수천 퍼센트 오르고, 인공지능 테마주가 실적과 무관하게 폭등하며, 부동산 영끌이 마지막 계층 상승의 사다리로 포장된다. 이미 뒤처졌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마지막 행운을 잡겠다며 투기판으로 몰려든다. 구조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대중의 시선이 분산되고 불만이 희석될 뿐이다.
그 혼란 속에서 너도나도 소셜미디어와 유튜브에서 자신만의 무대를 꾸미기 시작한다. 코인 인플루언서가 애널리스트를 대체하고, 유튜브 경제 논평가가 학자보다 더 많은 신뢰를 받는다. 주목받는다는 감각은 전율적이다. 시스템은 이들의 에너지를 흡수하며 오히려 더 단단해진다. 방관자였던 이들이 어느새 기존 질서를 강화하는 배우가 된 줄도 모른 채.
바로 이 순간, 아무도 무대 뒤에서 타오르는 불길을 보지 못한다. 미국의 재정적자는 사상 최대를 향해 치닫고, 달러 패권은 서서히 균열을 일으키고 있으며, 기후 위기와 지정학적 긴장은 임계점을 향해 다가간다. 현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오직 무대 위의 퍼포먼스다.
암호화폐 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스테이블코인 입법이 달러 패권과 글로벌 통화 질서를 근본적으로 재편할 수 있다는 분석은 묻히고, 다음 상승장 타이밍 예측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비트코인이 국가 준비자산이 될 수 있다는 논의보다, 오늘의 청산 규모가 더 많은 클릭을 얻는다. 우리 역시 이 연극의 배우가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다.
무대가 타오르는 동안 우리는 공연을 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