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정부가 미국과의 관세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고위급 회담을 시도했으나 별다른 진전을 얻지 못한 채 귀국길에 올랐다. 이번 협상 실패는 미국의 고율 관세가 예고대로 적용될 가능성을 키우면서, 스위스 수출 주도형 경제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줄 전망이다.
스위스 대통령 카린 켈러주터와 경제장관 기 파르믈랭은 8월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45분간 회담했으나, 상호 관세율 조정과 관련한 실질적 성과는 없었다. 이들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통보한 39%의 상호관세율을 낮춰보려 했으나, 정작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나 무역정책을 총괄하는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만나지 못했다. 급작스러운 방미 일정 탓에 사전 조율이 되지 않은 점이 협상력에 약점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이번 관세율은 지난 4월 처음 제안됐던 31%보다 8%포인트 높은 수준이며, 8월 7일부터 바로 시행됐다. 이로 인해 스위스는 유럽연합(15%)이나 영국(10%)에 비해 상당히 불리한 관세율을 적용받게 된다. 특히 스위스 정부는 미국과 15%의 양자 합의를 이룬 상태였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무역 역차별이 불거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미국 내 경기부양을 내세우며 자국 수입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정책을 강화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우방국 간에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모습이다.
더 큰 문제는 미국 측이 별도로 예고한 의약품에 대한 고관세 정책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스위스를 지목하며 자국 의약품 수입에서 지나치게 많은 이익을 얻고 있다고 비판했으며, 해당 품목에 대해 최대 250%까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의약품은 스위스의 전체 대미 수출에서 약 60%를 차지하는 핵심 품목으로, 블룸버그는 이 분야에 39% 관세가 적용될 경우 중기적으로 스위스 국내총생산(GDP)이 1%가량 줄어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스위스 국내에서는 정부 대응에 비판 여론이 거세다. 통상적으로 중립 외교를 지향하며 과거 어떤 강대국에도 휘둘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번 방미 외교를 두고 “굴욕적인 행보”라는 지적이 언론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특히 공영방송 SRF는 스위스 대통령의 방미를 두고 “외세에 아첨하지 않는다는 스위스 건국정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지난해 스위스와의 무역흑자 규모 385억 달러를 기준으로 관세율을 정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제기되고 있다. 이 논리에 따르면 흑자 10억 달러당 1%의 비율을 적용한 셈이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도 스위스와 미국 간 무역 협상에서 긴장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스위스 정부는 당장 관세가 발효됐더라도 계속해서 미국과 재협상을 시도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보호무역주의 기조를 유지하는 한, 스위스처럼 교역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를 가진 중소 국가는 타격을 완전히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