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칩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가 자사 최신 AI 칩인 ‘블랙웰’의 생산을 미국 현지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의 TSMC와 협력해 미국 애리조나 주에서 생산라인을 가동한 첫 사례로, 반도체 공급망의 미국 본토화 움직임이 본궤도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엔비디아는 기존까지 주로 대만 TSMC에 첨단 반도체 생산을 위탁해왔지만, 2025년 10월 17일(현지시간)부터 미국 애리조나에 위치한 TSMC 생산시설에서 블랙웰 칩의 대량 생산을 시작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블랙웰은 대규모 언어 모델(LLM)에 특화된 초고성능 칩으로, 앞선 제품인 ‘호퍼’보다 연산 처리 효율이 크게 향상된 것이 특징이다.
이번 생산 개시는 미국 정부의 반도체 산업 육성과 자국 내 전략기술 확보 정책에 부합하는 대목이다. 엔비디아는 생산 개시를 알리는 기념식에서 “미국에서 가장 정교한 반도체 공장에서 가장 중요한 칩을 생산하게 된 것은 역사적인 일”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직접 현장을 찾아 미국 생산 첫 웨이퍼에 서명하며 그 상징성을 부각시켰다. 그는 이 같은 경과가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해 온 산업 재편 정책의 구체적 실현”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애리조나 공장은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보조금 정책에 따른 결과물이기도 하다. TSMC는 바이든 행정부 당시 총 66억 달러(약 9조 4천억 원)의 보조금을 지원받고, 자체적으로도 65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진행해 이 공장을 설립했다. 지난해 말 생산을 시작한 이 시설은 이후 4나노미터 이하 첨단 공정을 통해 고성능 AI 반도체 생산의 거점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블랙웰은 TSMC의 ‘N5’ 공정을 발전시킨 ‘N4P’ 기반에서 생산되며, 이는 5나노미터급 칩보다 더 높은 성능과 전력 효율을 제공한다.
이번 조치는 단순한 생산지 확대 그 이상으로 해석된다. 엔비디아 측은 미국 내 AI 기술 스택 구축을 통해 자국 중심의 공급망을 강화하고, 인공지능 시대의 글로벌 기술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AI 개발과 활용의 핵심 부품인 고성능 반도체를 미국에서 직접 생산함으로써, 기술 안보뿐 아니라 산업 경쟁력 측면에서도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 미국 내 반도체 생산 생태계를 더욱 견고히 하고, 엔비디아를 비롯한 글로벌 AI 기업들의 현지화 전략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 동시에 반도체 제조를 둘러싼 미국과 대만 간 협력도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