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중앙은행이 발행을 추진해온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이른바 ‘디지털 파운드’ 계획이 보류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디지털 화폐의 실효성과 필요성에 대한 회의론이 점차 고조되면서, 당국이 계획 전반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는 23일(현지시간),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영국 중앙은행(BoE)이 리테일용 디지털 파운드 도입 여부를 재고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디지털 화폐가 실제 금융 시스템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나온 결정으로, 영국이 CBDC 도입에서 한 발 물러서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보도에 따르면 BoE 내부에서는 CBDC 개발보다는 민간 은행이 직접 결제 기술 혁신을 주도하도록 장려하는 쪽으로 의견이 기울고 있다. 앤드루 베일리(Andrew Bailey) BoE 총재는 이날 열린 영국 의회 재무위원회 청문회에서 “민간 은행들이 결제 혁신에서 성과를 거둔다면 디지털 파운드 도입 필요성을 설득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민간 부문에서의 기술 발전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그는 “기술 혁신이 소비자에게 실제로 효용을 가져다준다면, 우리가 굳이 새로운 형태의 화폐를 출시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이는 BoE가 지난 2023년에 “디지털 파운드는 미래에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힌 기존 입장과는 상당한 온도차를 보이는 발언이다.
이 같은 분위기는 단지 영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최근 여러 국가에서 국가 주도의 디지털 화폐 도입에 대한 지지가 약화되고 있는 추세다. 특히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Atlantic Council)이 운영하는 CBDC 트래커에 따르면, 영국의 디지털 화폐 개발은 여전히 ‘개발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주요국과 비교해 도입 속도도 더딘 상황이다.
영국 중앙은행과 재무부는 아직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았으나, 민간 혁신에 우선권을 둔 최근 발언들을 종합하면 디지털 파운드 계획이 중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이러한 움직임은 향후 글로벌 CBDC 시장의 방향성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