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피터 하윗 미국 브라운대 명예교수는 15일 한국이 성장 확대를 겨냥한 정책과 재정 관리의 균형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다며,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 성장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하윗 교수는 이날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경제·인문사회연구회(NRC)가 연 ‘성장추세 반전을 위한 경제 패러다임 전환’ 콘퍼런스에 참석해 하준경 대통령비서실 경제성장수석과 대담했다. 그는 최근 몇 년간 이어진 한국의 성장률 둔화가 구조적으로 불가피한 측면은 있지만, 정책 대응에 따라 하락 속도와 폭은 달라질 수 있다고 봤다. 다시 말해 저성장 추세가 완전히 고정된 것은 아니며, 정부가 어떤 성장 전략을 펴느냐에 따라 반전의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그는 특히 재정 지출 확대에 신중해야 한다는 재정 보수주의와 성장 촉진 정책이 반드시 충돌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경제가 살아나면 세수가 늘어 정부 재정도 더 안정될 수 있다는 논리다. 하윗 교수는 한국이 친성장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재정적자를 비교적 잘 관리하고 있고, 물가상승률도 2%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성장, 재정, 물가라는 세 가지 축을 동시에 관리하는 것은 쉽지 않은데, 현재 한국은 그 균형을 일정 부분 이뤄내고 있다는 평가로 읽힌다.
올해 1분기 성장률이 예상보다 강하게 나온 배경으로는 한국의 반도체 경쟁력이 꼽혔다. 그는 인공지능(AI)이 어떤 산업 구조로 자리 잡더라도 결국 고성능 반도체 칩 수요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를 중심으로 생산 기반과 기술 축적이 탄탄한 만큼, AI 확산이 오히려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세계 경제가 금리, 지정학, 무역 갈등 같은 불확실성에 흔들리는 가운데서도 한국이 특정 첨단 산업에서 비교우위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다시 확인한 발언으로 볼 수 있다.
다만 그는 AI 확산이 일자리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짚었다. 특히 청년층은 기술 변화에 가장 먼저 노출되지만 노동시장 안착은 가장 늦는 계층인 만큼, 교육 혁신과 산학 협력, 정부의 보완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사례로는 기업이 기술 도입 과정에서 직원을 해고할 경우 정부가 해고된 노동자의 임금 일부를 지원하는 덴마크의 ‘플렉시큐리티’ 제도를 들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높이되, 실직자의 생활과 재취업을 사회안전망으로 받쳐주는 방식이다. 그는 앞선 기조연설에서도 AI를 개인용 컴퓨터, 전기화, 자동차처럼 경제 구조 전반을 바꾸는 범용 기술로 규정하면서, 교육체계와 금융시스템, 사회안전망까지 함께 바꾸는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윗 교수는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인구구조 변화에도 별도 대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개방적인 무역 체제가 혁신의 중요한 전제라며 무역 연대 다변화와 내수 기반 강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했고, 인구 감소에 대응해서는 혁신 인재를 끌어들이는 선택적 이민 확대도 검토할 만하다고 말했다. 이날 콘퍼런스에서는 생산성 둔화, 연구개발(R&D) 투자 효율 저하, 노동시장 경직, 지역산업 정책의 한계 같은 구조적 과제도 함께 논의됐다. 이런 흐름은 결국 한국 경제가 단기 경기 부양만으로는 성장세를 이어가기 어렵고, 반도체와 AI 같은 강점을 살리면서 교육·고용·산업정책을 함께 손보는 구조개혁이 뒤따라야 성장 반전 가능성이 현실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