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시 나카모토가 2008년 백서를 세상에 내놓았을 때, 그것은 분노의 산물이었다. 리먼브라더스 붕괴, 월가의 탐욕, 파생상품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구조화된 약탈. 비트코인은 그 반성문 위에서 태어났다. 중앙은행도, 중개 기관도 없는 세계.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지 않아도 되는 직접 거래의 화폐.
비트코인 현물 그 자체는 지금도 그 철학을 충실히 구현하고 있다. 사토시의 정통은 오늘도 조용히 블록을 쌓는다. 문제는 비트코인이 아니다. 그 이름을 빌려 위에 기생한 자들이다.
역사적으로 이단은 언제나 정통보다 더 화려하고 더 빠르게 번졌다. 암호화폐 시장도 다르지 않다. 사토시의 정통이 묵묵히 블록을 쌓는 동안, 이단의 도박판에는 수십 배의 돈과 군중이 몰렸다. 오늘날 글로벌 암호화폐 무기한 선물 거래소들은 수백 배에서 1000배에 달하는 레버리지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제공한다. 무기한 선물 계약은 만기조차 없어 투기의 불씨가 영구히 꺼지지 않도록 설계됐다. 365일 24시간, 잠드는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주식시장에는 서킷브레이커가 있고, 전통 선물시장에는 증거금 규제가 있으며, 도박장에도 폐장 시간이 있다. 그러나 이 시장에는 아무것도 없다. 절제를 강제하는 장치가 단 하나도 없다.
밈코인은 이 구조의 완성형이다. 아무런 가치도, 기술도, 철학도 없이 오직 집단적 망각과 군중 심리만으로 수천 퍼센트를 오르내린다. 누군가는 폐가하고, 누군가는 배를 불린다. 부끄러움이 사라진 시장이다. 이단은 정통의 언어를 빌리되 정통의 양심은 버렸다.
문명은 절제 위에 세워졌다. 법이 절제를 강제하고, 도덕이 절제를 권고하며, 수치심이 절제를 내면화한다. 존 로크는 300년 전에 이미 선을 그었다. "자유의 상태라 할지라도, 그것은 방종의 상태가 아니다." 인류가 도박을 완전히 허용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즐거움이 없어서가 아니라, 제동 없는 욕망이 공동체를 파괴한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했기 때문이다. 수치심은 문명의 마지막 방파제다. 그런데 지금 이 시장에서 수치심은 흔적도 없다.
이단은 언제나 원전(原典)을 왜곡하며 번성한다. 규제를 피한다는 명분 뒤에, 분산화라는 이념 뒤에, 자유라는 언어 뒤에 숨어 있다. 사토시의 이단들은 그 선을 진작에 지워버렸다. 자유와 방종은 다르다. 300년 전 로크가 그었던 그 선은, 암호화폐 시장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비트코인은 월가를 비판하며 태어났다. 그런데 지금 그 이름 아래 월가보다 잔인한 도박판이 세워졌다. 정통은 침묵하고, 이단이 시장을 지배한다. 이것을 혁명이라 불러야 하는가, 아니면 그냥 타락이라 불러야 하는가.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도박판이 끝나는 방식은 언제나 같았다. 군중이 그것을 깨닫는 순간은, 모든 것을 잃고 난 뒤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