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 상위 5개 빅테크 기업이 여전히 막대한 자금력을 자랑하면서도 스타트업 인수에는 눈길을 덜 주고 있다. 엔비디아(NVDA), 애플(AAPL), 마이크로소프트(MSFT), 알파벳(GOOGL), 아마존(AMZN) 등은 현재 시가총액 총합이 16조 달러(약 2경 3,040조 원)를 웃돌며, 현금 보유액만 해도 4,000억 달러(약 576조 원)에 달한다. 그러나 2025년 들어 이들이 발표한 벤처 투자 기반 비상장 기업 인수 건수는 겨우 10건에 불과하다.
눈에 띄는 대형 인수는 구글이 보안 스타트업 위즈(Wiz)를 320억 달러(약 46조 원)에 사들이기로 한 계약이 유일하다. 이 거래는 아직 반독점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지만, 클라우드 보안이라는 분야 특성상 광고·검색 등 주요 사업과 거리가 있어 규제당국의 우려를 일부 덜 수 있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나머지 인수 사례들은 대부분 가격이 공개되지 않은 작은 거래들이다. 예를 들어, AI용 합성 데이터 플랫폼 그레텔(Gretel)을 인수한 엔비디아, 인도의 핀테크 기업 악시오(Axio)를 품은 아마존, 그리고 초기 단계였던 디자인 스타트업 갈릴레오 AI와 웨어러블 AI기업 비(Bee)를 각각 인수한 구글과 아마존의 경우가 그렇다. 그중 일부는 상당한 규모의 자금을 유치한 이력도 있어, 실질적인 인수 대금 역시 적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들 '빅5'는 비공식적으로 인수를 단행하거나, 규모가 작아 공개 의무에서 벗어난 거래도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실제 스타트업 흡수 규모는 집계보다 클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조용한 행보는 단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장기적 변화로 봐야 한다는 시각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과거만 해도 대형 IT 기업에 인수되는 것이 스타트업의 대표적 ‘엑싯 경로’였지만, 규제 리스크와 M&A 관련 복잡한 절차로 인해 이 전략은 점차 힘을 잃고 있다. 대신 이들 기업은 유망 스타트업에 투자하거나, 파트너십 체결, 혹은 핵심 개발자를 직접 채용하는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는 중이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해 생성형 AI 스타트업 인플렉션 AI에서 공동창업자와 핵심 R&D 인력을 빼내고 기술 라이선스까지 확보한 바 있다. 직접 회사를 통째로 사들이지 않고도 인적자원과 기술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론이 정착되고 있다는 의미다.
M&A 활동이 정체돼 있음에도 이들 기업의 시장 가치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있다. 투자가들 역시 이 변화를 문제로 보지 않으며, 오히려 빅테크의 유연한 전략 전환을 높은 실적 지속 가능성의 신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AI·클라우드·핀테크 등 핵심 분야에서의 적극적 파트너십과 선택적 인수 전략이 이제는 '뉴 노멀'이 됐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