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스타트업 이름의 창의성과 엉뚱함이 업계의 활력을 대변하던 시절이 있었다. 너구리, 하마, 당근 같은 단어로 스타트업 이름을 짓던 창업자들은 이름만으로도 투자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코인버프'처럼 다소 황당한 이름을 달고도 투자금을 모으는 일이 가능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이 같은 작명 문화는 급격히 사라졌고, 그 자리를 지나치게 *무난한* 이름들이 차지하게 됐다.
스타트업 이름에서 *기발함*이 빠진 이유는 다양하다. 첫째, 소비자 중심 브랜드보다는 기업용 소프트웨어나 인공지능 같은 기술 기반 스타트업이 중심이 되면서 감각적 마케팅보다는 기술력 중심의 이미지가 중요해졌다. 둘째, 시장을 주도하는 유니콘 스타트업 대부분이 'OpenAI', 'Anthropic'처럼 딱딱하고 중립적인 이름을 사용하는 경향도 작명 전략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과거에는 트렌디한 그리고 다소 우스꽝스러운 작명 방식이 정점을 찍은 시기도 있었다. 2016~2017년에는 의도적인 맞춤법 파괴를 통해 회사 이름을 꾸미는 전략이 유행했다. '카드'는 'Kard', '커스터머'는 'Kustomer'로, 익숙한 단어를 비틀어 접근성을 확보하는 기법이었다. 이어지는 시기에는 동물 이름을 결합한 브랜드가 인기였다. 'MonkeyLearn', 'MortgageHippo' 같은 예가 그 대표 주자다.
2018년부터는 실존할 법한 가상의 단어, 다시 말해 ‘신조어 스타일’이 대세가 됐고, 'Trustology', 'Locomation'처럼 낯설면서도 익숙한 울림을 주는 이름들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러던 것이 2019~2020년에는 아예 직관적인 브랜드명으로 변화했다. 제품과 서비스의 기능을 그대로 담아낸 'Grow Credit', 'The Browser Co.' 같은 기업명이 유행했다. 복잡한 마케팅이 아니라 ‘무엇을 하는 회사지?’라는 질문에 직답을 주는 방식이었다.
2021~2022년, 팬데믹 영향이 지속되던 시기에는 'ly', 'ify' 같은 접미사를 활용한 작명 기법이 인기였다. 'Shopify', 'Bitly'의 성공이 뒤따르는 흐름이었으며, 경쟁적인 상표 출원 속에서도 참신한 이름을 찾기 위한 전략 중 하나였다.
2023년 이후 스타트업 이름은 더욱 *무미건조*해졌다. 시장에 등록된 상표가 워낙 많기도 하고, 글로벌 법률 환경까지 감안해야 하다 보니 창의력보다는 안전하고 중립적인 이름이 우선됐다. 특히 인공지능 기업 붐 속에서 등장한 'Safe Superintelligence', 'CoreWeave', 'xAI' 같은 이름은 기술 신뢰도를 강조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현재 시장은 자금 조달 환경이 까다로워지면서, 창업자들의 작명 전략 역시 더 조심스러워졌다. 최근 투자 유치에 성공한 스타트업들의 이름을 보면 'Theo', 'Gruve', 'Project Orca' 등 여전히 동물명이나 철자 변형, 인명 중심 작명이 일부 남아 있긴 하지만, 과거처럼 스스럼없이 웃음을 유도하던 시도는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기업명을 짓는 데 있어 재미보다 실용성을 중시하는 방향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창업은 본질적으로 모험이고, 공동체를 설득하는 작업이다. 거기에 적당한 유머와 비범함이 깃든 이름 하나쯤은, 탁월한 브랜딩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언젠가 또 한 번의 변곡점이 올 가능성은 남아 있다. 브랜드의 창의성을 다시 끌어올릴 새 선도자가 나타날 날을 기다리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