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주요 국가들이 암호화폐 투자자들을 위한 시민권 및 거주권 프로그램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특히 비트코인(BTC), 이더리움(ETH) 및 테더(USDT) 보유자들이 디지털 자산으로 새 국적과 장기 체류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기회가 늘고 있는 추세다. 암호화폐와 글로벌 이동성은 더 이상 미래의 개념이 아닌, 현재 세계 곳곳에서 현실화되고 있는 조합이다.
대표적인 예로 남태평양의 바누아투는 단기간 내 시민권 취득이 가능한 국가 중 하나로, 정부가 직접 암호화폐를 받지는 않지만, 공식 허가를 받은 에이전트를 통해 비트코인이나 USDT 등으로 비용을 납부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싱글 신청자는 약 18만 7000달러(약 2억 6,000만 원), 4인 가족 구성은 26만 원(약 3억 6,000만 원) 수준으로, 모든 절차가 원격으로 이뤄지며 거주 요건도 없다. 개인소득세, 양도소득세, 상속세가 면제되는 점도 매력이다.
카리브해 지역의 도미니카와 세인트루시아 또한 암호화폐를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시민권 투자 프로그램을 운용 중이다. 도미니카는 27만 8,000달러(약 3억 8,600만 원) 이상의 기부를, 세인트루시아는 약 33만 3,000달러(약 4억 6,300만 원) 상당의 부동산 투자 또는 기부를 조건으로 하고 있으며, 암호화폐는 제휴된 에이전트를 통해 환전해 사용한다. 양국 모두 최대 9개월 내 여권 취득이 가능하며,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국가 수가 많고 가족 전체가 포함될 수 있어 암호화폐 보유자들에게 인기다.
유럽연합(EU) 내에서는 포르투갈 골든 비자 프로그램이 눈에 띈다. 2023년부터 부동산이 아닌 벤처펀드 등 투자 중심으로 제도가 개편되었으며, 대부분의 펀드가 비트코인 연계 상품을 통해 크립토 자산을 기반으로 자금 모집이 가능하다. 자격 기준은 최소 50만 유로(약 7억 2,400만 원)이고, 승인된 펀드를 통해 신청하면 5년 뒤 국적 취득 자격도 부여된다. 연 7일 거주 요건 이외엔 상주 의무가 없고, 장기 보유한 암호화폐에 대해선 과세하지 않아 디지털 노마드 또는 장기 투자자에게 적합한 선택지다.
라틴아메리카의 엘살바도르는 더욱 과감하다. 2023년 12월 출시된 ‘프리덤 비자’는 세계 최초의 순수 암호화폐 기반 이민 프로그램이다. 연간 1,000명 한정으로, 비트코인 또는 테더로 100만 달러(약 13억 9,000만 원)를 직접 투자하면 시민권을 빠르게 받을 수 있다. 신청 초기에는 999달러(약 139만 원)의 비환불 보증금만 납부 후, 승인시 나머지 금액을 투입한다. 이 모든 과정은 현지 정부와 협력하는 테더 측이 전담하며, 전혀 법정 화폐 없이도 절차를 완료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참여자는 거주 요건도 없으며, 투자금은 인프라와 기술, 교육 관련 프로젝트에 쓰인다.
이처럼 암호화폐로 시민권을 확보할 수 있는 선택지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신청에 필요한 자산 규모는 14만 달러(약 1억 9,500만 원)대에서 최대 100만 달러(약 13억 9,000만 원)까지 다양하고, 표준화된 ‘법정화폐 전환 방식’부터 ‘직접 디지털 자산 수령 모델’까지 국가마다 접근법도 각기 다르다. 비트코인 부호나 장기 홀더, 디지털 기반 기업가라면, 이동성, 세금, 안전망 삼박자를 고루 갖춘 이민 전략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