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과 애플을 비롯한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정밀지도 데이터 반출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한미 간 핵심 통상 이슈로 부상한 가운데, 정밀지도의 전략적 개방이 국내 공간정보산업 성장에 상당한 경제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정보통신산업연구원 이호석 연구원과 호서대학교 곽정호 교수는 지난 7일 발표한 공동 연구논문에서 정밀지도 데이터를 해외로 반출할 경우,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약 18조4천억원의 매출 증대와 더불어 고용 창출 또한 대폭 늘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국내 공간정보산업의 성장세가 최근 급격히 둔화되고 있는 현실에 주목하면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지도 데이터의 전략적 개방을 제안했다.
국내 공간정보산업은 2019년 총매출액이 약 9조3천억원에서 2023년 약 11조원으로 증가했지만, 연평균 성장률은 4.31%에 그쳤다. 특히 2021년 성장률이 9.92%였던 데 비해 2022년 2.55%, 2023년 0.6%로 급격하게 낮아져 성장 동력이 약화됐다는 진단이 나왔다. 연구진은 이러한 상황이 노동집약적 구조에 기초한 기존 산업 모델이 한계에 직면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한편 정밀지도의 반출 문제는 국내와 해외 기업 간 이해 충돌이 얽힌 민감한 사안이다. 정부는 국가 안보 및 군사시설 등 보안 위험을 이유로 해외 서버에 데이터를 이전하는 데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구글과 애플 등은 지도 플랫폼 고도화를 위해 국내의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필요로 하고 있으며, 이는 자율주행차·스마트시티·증강현실 등 첨단 분야의 기반 기술이기도 하다. 구글은 지난 2월, 2011년과 2016년에 이어 세 번째로 5천대1 정밀지도 반출을 국토지리정보원에 요청한 상태이며, 정부는 이 결정을 내달까지 미룬 상황이다.
이번 연구에 따르면 정밀지도 반출을 허가하지 않는 경우, 2030년 공간정보산업 매출은 14조8천억원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측됐지만, 해외 사례와 유사한 성장률을 적용한 시나리오에서는 21조7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고용 측면에서도 지도 데이터를 개방할 경우 약 1만3천명 추가 고용이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 같은 흐름은 단순한 산업 전망을 넘어, 국가가 기술주권과 산업 경쟁력 간 균형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적 시사점을 제공한다. 향후 정부가 보안과 산업 육성 사이에서 어떤 판단을 내릴지에 따라, 공간정보산업의 성장 경로가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산업계에서는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