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NVDA)가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도 중국 시장에 대한 집착을 놓지 않고 있다. 최근 미국 정부의 수출 제한 강화로 인해 기존 AI 반도체의 중국 판매가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엔비디아는 새로운 저사양 블랙웰(Blackwell) GPU를 통해 우회로를 모색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조만간 블랙웰 아키텍처 기반의 저전력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중국에 출시할 전망이다. 이 신제품은 기존의 H20 GPU보다 성능은 떨어지지만, 가격은 약 6,500달러(약 9,400만 원)에서 8,000달러(약 1억 1,500만 원) 수준으로, H20의 절반 수준이다. H20은 이전 세대인 호퍼(Hopper) 아키텍처 기반으로, 그 자체도 이미 제한된 규제를 피하기 위해 설계된 칩이었다.
이번 조치는 2025년 4월, 미 상무부가 AI 칩의 메모리 대역폭 기준을 강화해 H20마저 중국 수출 금지 목록에 포함시킨 이후 취해진 전략적 대응이다. 당시 미 정부의 조치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안보적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평가되며, 이는 세계 AI 산업을 주도하는 기술이 중국으로 이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규제 속에서도 엔비디아는 중국 시장이 여전히 놓칠 수 없는 대상이라고 판단하는 모습이다. 회사 측은 "새로운 제품 설계안이 확정되고 미국 정부 승인 절차를 거치기 전까지 우리는 사실상 500억 달러(약 72조 원) 규모의 중국 데이터센터 시장에서 배제됐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연매출의 13%가 중국에서 발생했으며, 높은 기술 의존도를 고려할 때 이 시장을 완전히 포기하긴 어렵다.
이번 저사양 칩은 서버용 블랙웰 GPU인 'RTX Pro 6000D'를 기본으로, 고대역폭 메모리(HBM) 대신 GDDR7 메모리를 사용하며, 제조 공정 또한 TSMC의 첨단 칩온웨이퍼온서브스트레이트(CoWoS) 패키징이 아닌 기존 방식이 적용된다. 빠르면 6월부터 양산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맞서 중국 로컬 경쟁자인 화웨이도 자체 GPU 'Ascend 910B'를 통해 점유율 확보에 나서고 있다. 반도체 자문사인 화이트오크캐피털파트너스의 애널리스트 노리 췌우는 "화웨이가 향후 1~2년 내 엔비디아의 다운그레이드 칩과 대등한 성능을 구현할 것"이라고 전망하며 중국 내 경쟁 심화를 예고했다.
다만 CUDA 플랫폼이라는 엔비디아의 핵심 강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는 AI 모델 최적화에 널리 활용되는 GPU 소프트웨어 아키텍처로, 수많은 개발자들이 이에 기반해 클러스터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어 쉽게 대체가 불가능하다는 평가다.
한편 엔비디아는 수출 제한 조치 직후 약 55억 달러(약 7조 9,000억 원) 상당의 재고 자산을 손실로 처리해야 했고, 최대 150억 달러(약 21조 6,000억 원)에 이르는 매출 기회를 포기해야 했다. 젠슨 황 CEO는 이와 관련해 호퍼 베이스의 칩으로는 더 이상의 성능 조정이 어려워 새로운 아키텍처 설계가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엔비디아는 반복되는 규제에도 불구하고 AI 칩시장의 세계 최대 성장 거점인 중국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이번 스케일다운 GPU가 과연 강력한 통제에 맞서 회사의 생존 전략을 정당화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